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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상전인가|친야좁아 대출 선별 능력 약해|"이자주고 돈 쓰는데 텃세 심하다"…기업인들 불평 예금자·주주보호엔 신경 안 쓰고 위의 눈치만 살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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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기업인들은 기업과 은행의 관계는「단연코 은행우위」라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돈쓸 사람은 많은데 꿔줄 돈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업은 항상 은행에 대해 저자세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거래은행제가 생기고부터는 은행의 힘이 더 강해졌다. 기업의 투자활동 등 경영전반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인들이 은행의 우위를 기쁘게 승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아쉬우니 죽으라면 죽는 흉내는 내지만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은행이 서비스 산업이면서 꼭 관청같이 군림한다고 불만이다. 은행이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고 또 기업의 경영을 지도하려면 기업보다도 앞서가야 하는데 오히려 낙후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기업은 그래도 정보·조직·관리면에서 눈부신 변화와 적응을 하고 있으나 은행측은 관치의 멍에에 묶여 제몸조차 가누기도 힘든 형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은행이 기업보다 긴 시야와 정확한 감각을 갖고 기업을 지도하기는커녕 기업이 하려는 일을 이해조차 못한다고 불만이다.
예를 들어 은행이 경기전망이나 세계경제동향 등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갖고 고객인 기업에 대해 이를 서비스해야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못하고 확장 규모에 맞느니 안 맞느니 - 그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것을 가지고 - 하는 것만 따지니 은행이 기업을 지도·보호해갈것은 고사하고 발목을 잡아당기는 격이라고 비유한다. 또 은행의 하는 일이 너무「만만띠」(만만적)라고 불만이다.
은행의 보수성은 인정하지만 금융도 비즈니스인 이상 경영자가 책임을 지고 판단을 해야지, 항상 면책만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까다롭게 챙겨도 율산·신승기업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몇백억짜리 대손 사건들은 잇달아 터지니 결국 큰 구멍은 그대로 놓아두고 괜히 엉뚱한 곳만 까다롭게 군다고 꼬집는다.
지급보증을 하나 하는데도 한두달이 걸리는 등 은행이 관청인지 장사하는 곳인지 구별조차 어렵다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한국적 현실에서는 어쨌든 은행돈을 쓰는 것은 하나의 특혜처럼 되었는데 「돈얻어내는것이 너무 힘들어 고맙다는 생각보다는 이자 내고 돈 쓰는데 텃세가 심하다」는 생각이 앞선단다.
이런 현상은 중앙은행이나 국책은행일수록 심하다는 것이 공통적인 얘기다.
기업인들은 또 은행이 업계를 너무 모른다고들 한다. 업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데 은행은 자체내의 혁신(이노베이션)이 눈에 띄지 않는단다.
현실에 맞지 않은 발상과 관행과 규정에 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의 변화에 둔감하니 자연히 대출심사능력에 한계를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기업인들은 또 지금은 은행장이나 행원이나 명칭만 다르지 하는 일은 마찬가지라고들 비꼬아 말한다. 판단을 않고 규정과 지시대로만 움직인다는 뜻이다.
은행은 예금자들의 돈을 맡아서 관리하는 곳이고 또 공개기업인만큼 예금자와 주주보호에도 신경을 써야하는데 그런 것은 무시한 채 위의 눈치만 본다는 것이다.
율산은 여러 금융인들의 사후책임을 물었지만 몇백억원의 손해를 입힌 신승기업에는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역시 은행은 좋은 곳」이라고들 비꼬아 말한다.
기업 측에선 만약 기업을 하다가 신승같은 손해가 났다면 경영자의 목은 백개가 있어도 모자랄 것이라고 말한다.
경영성과에 대한 책임이 기업은 삼엄한데 비해 은행은 훨씬 덜하다는 것이다.
물론 은행에도 남모를 고충이 많겠지만 매순간 판단을 내리면서 그 결과에 자리를 걸어야하는 기업경영에 비한다면 은행은 훨씬 무풍지대라는 것이다.
기업인들은 은행도 분명한 장사니만큼 자유경쟁과 책임경영체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은행도 장사를 잘하는 곳은 이익도 많이 올리고 대우도 잘해주어 마킷셰어를 늘리고 그렇지 못한 은행은 도태되는 적자생존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는 최근 2∼3년 동안 기업은 불황에 허덕이고 인건비와 맞먹는 금융비용을 지불하는데도 은행은 앉아서 헤엄치기 식으로 막대한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어딘가 잘못됐다고 불만이 대단하다.
한 중진기업인은 『이는 마치 선수는 배를 쫄쫄 굶으면서 열심히 뛰는데 선수를 지원하는 자는 편안히 앉아 배를 불리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기업의 재무구조가 나빠 은행돈을 많이 써야하는 처지에서는 은행의 우위는 계속 될 수밖에 없다.
자유경쟁과 책임경영체제의 도입만이 은행의 경영합리화를 이룩할 수 있는 길이라고 기업인들은 강조하고 있다. <박병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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