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비서 출신 김혜경 … 숨긴 재산 밝힐 핵심인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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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 요원들이 김혜경 전 한국제약 대표를 연행하고 있다. [사진 HSI]

유병언(73·사망) 전 청해진해운 회장의 최측근 김혜경(52·여) 전 한국제약 대표가 미국 현지에서 체포됐다. 유 회장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김씨가 체포됨에 따라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유 전 회장 일가의 재산 환수 작업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법무부는 미국 이민관세청(ICE) 산하 국토안보수사국(HSI)이 4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매클린에 있는 쇼핑몰 ‘타이슨스 코너’ 부근에서 김씨를 이민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고 5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 3월 버지니아주에서 유학 중인 두 자녀를 만나기 위해 90일짜리 비자 면제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 입국해 언니의 집에서 함께 머물렀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 후 한국 검찰의 요청으로 미국 당국이 체류 자격을 취소하면서 쫓기는 신세가 됐다. 검찰은 김씨가 거듭된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자 범죄인 인도청구와 함께 인터폴을 통해 적색수배령을 내리기도 했다. 법무부는 지난 6월 말 미국에 실무협의단을 파견해 김씨의 체포 및 송환을 강력하게 요청하기도 했다. HSI는 김씨 일행의 카드 사용내역과 계좌, 인터넷 사용내역 추적 등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다. 2개월간의 집중 추적 끝에 이날 검거에 성공한 것이다.

 김씨는 1990년대부터 유 전 회장의 비서로 일하며 일가의 재산관리 및 해외재산 형성에 깊게 관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본인은 청해진해운의 지주회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의 3대 주주다. 최근에는 경기도 이천과 강원도 강릉 등 전국의 땅을 집중 매입했다. 검찰은 이 부동산을 사들이는 데 유 전 회장이 빼돌린 돈이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유 전 회장 일가로부터 세월호 침몰 사고의 처리비용을 받아내는 데 김씨가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가 추산하고 있는 세월호 수습비용은 6213억여원에 이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찾아낸 유 전 회장 일가 재산은 가압류와 추징보전 등으로 확보한 1000억~2000억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실소유자가 유 전 회장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검찰은 김씨의 진술을 통해 유 전 회장 일가의 숨겨진 국내외 차명 재산을 더 추적하고 현재까지 확보한 차명 재산들이 유 전 회장의 재산임을 입증하는 데 필요한 증거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씨 신병은 확보했지만 한국 검찰에 인도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씨가 출국에 동의할 경우 이르면 1~2일 안에도 강제송환이 가능하다. 하지만 거부할 경우 재판을 받아야 한다. 주미 대사관 관계자는 “범죄인 인도청구 재판보다는 불법체류에 따른 이민재판을 통하는 게 신병 확보에 더 빠른 길이지만 김씨가 변호인을 선임해 여권무효화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전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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