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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서 번창 「지하사기업」|의류·신발류에 팝송레코드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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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모든 생산수단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소련에서도 최근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들이 번창하고 있다. 근착의「렉스프레스」지는 이른바 지하사기구으로 불리는 이들 기업들이 기계류나 자동차같은 중공업제품을 생산하지 않지만 의류·신발류등의 생필품 분야에서는 국영기업과 맞겨루고있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이 잡지가 파헤친 소련지하사기업의 번창하는 실상이다.
지하사기업의 주요 제품은 의류·신발류·선글라스·서양팝송레코드·핸드백등 소비자들이 즐겨찾는 것들. 모스크바·오데사·리가·티플리스등에서 주로 생산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들 지하사기업은 러시아·우크라이나·발트공화제국(에스토니아·리두아니아·라트비아공화국) 에서 주로 유대인들에 의해 경영되기 시작했다.
제정러시아시대에 인종차별을 받던 유대인들은 1917년 소련혁명후 차별대우에서 벗어나 사회각분야로 진출하여 삼당한 지위를 확보했다.
그러나 2차대전이 끝날무렵「스탈린」이 다시 인종차별 점책을 펴,이들은 당과 정부에서 축출되고 대학과 직장에도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되자 지하사기업으로 방향을 돌리게되었다.
「글라젠베르그」3형제와「바흐」가는 그 전형적인 예. 2차대전이 끝나 제대를 하고 모스크바로 돌아온 「글라젠베르그」형제들일은 유대인이라 신통한 자리를 구하지 못해 지하사기업에 투신했다.
소규모 인조피혁가방공장을 경영하던 이들은 뛰어난 사업수완을 발휘, 수년후에는 공장을 10개나 거느리게 되었다. 사업규모가 커지자 DCMSP(사회주의 재산악용방지기구)의 한직원이「이즈베스티야」지에 투서를해 조사를 받게 되었다. 이들 3형제는 그동안 DCMSP간부들에게 상당한 뇌물을 바쳐왔다.
DCMSP는 이들에관한 서류파일을 없애는 대신 막내인「라자르」만을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이유로 희생시키기로 했다.「라자르」는 15년의 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사망했다.
30년대 중반에 조그마한 공장을 시작한 「바흐」라는 사람은 40년대말에 이르러서는 겉으로는월급 1백60루불 (공식환율로 1루볼은 1·4달러)을 받는 보잘것없는 공장감독으로 행세했으나 실제로는 내의·기념품등을 생산하는 10여개 공장의 주인이었다.
이처럼 소련에서 백만장자가되는 가장 쉬운 길은 쉽게 팔리는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갖는 것이다. 공장을 갖기 위해서는 자금이 있거나 지하 사기업계에 줄이 닿거나 또는 탁월한 재능이 있으면 된다.
일단 기업을 소유한 뒤에는 당이나 정부에 줄이 닿는 사람을 고용해 기업의규모나 일의 능력에 따라 급여를 주면서 기업을 보호한다. 고용된 사람중에는 영웅칭호를 받은 사람도 있다.
지하사기업주들은 정부로부터 제품생산을 위한 원자재를 공급받은후 책임생산량을 교묘히줄여 원자재를 빼돌리기도 한다. 연구소나 협회의 기술자와 협상하여 책임생산량을 줄이기도하고 심지어는 요구된 사이즈보다 제품을 작게 만들거나 염료따위를 적게 쓰면서까지 원자재를 남겨 자신들의 상품을 생산하는데 사용한다.
생산된 상품들은 국영기업제품판매상점으로 쉽게 들어간다. 이곳의 점원들은 기꺼이 지하사기업의 상품을 팔아주는데 왜냐하면 상품매상액의 약3분의1이 그들의 음성수입이 되기때문이다.
지하사기업주들은 번돈을 마음대로 쓰지도 못한다. 모든 지출은 DCMSP의 감시를 의식해야 하기 매문이다. 아내에게 선물할 모피코트 한벌을사는 경우에도 정당한 수입에서 쓰여진다는 증명을 해야한다.
자유경제체제하의 기업들은 기업확장, 신기술개발, 광고등에 돈을 쓴다. 그러나 사기업활동이 금지된 소련에서는 얼마만큼의 돈이 이러한 용도에 쓰여지는지를 추산하기는 어렵다.
다만 뇌물로 쓰여지는 돈은 상당하리라는 추산이다.
또 이들은 번돈을 은행에 예금하지도 않는다.
고액의 예금은 은행간부에 의해 DCMSP에 보고된다. 루블화도 믿지못하기 때문에 현금을 달러나 귀금속 또는 제정러시아 금화등으로 바꾼뒤 은밀한 곳에 묻거나 집안의 벽속에 숨겨두는 예도 흔하다.
루블화를 달러나 귀금속으로 바꾸는 일은 쉽지않다.
주로 아랍과 아프리카에서 복무하고 돌아오는 외교관과 군장교들이 가져온 외화와 귀금속이 암시장에서 널리 거래된다.
어느날 KGB(소련국가안보위윈회) 요원들이 모스크바의 한낡은 빌딩지하실을 급습,벽속에 숨겨진 거액의 금화와 5백46개럿에 상당하는 보석을 압수한적도 있다.
지하사기업으로 성공한 백만장자들은 자식들이 또다시 이러한 사기업에 투신하기를 바라지 않고 학계·법조계 또는 의학계로 진출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2세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획득한 후에도 가업을 계승한다.
경제범을 단속하는 방대한 조직을 갖춘 소련에서 당국자를 매수하지 않고는 지하사기업은 단한달도 존립할 수 없다.
이같은 공직자의 부패는 공산체체가 인간의 근본적인 충동과 욕구를 말살하면서 치르고 있는 값비싼 댓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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