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산악인의 동료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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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산이 좋아 산을 타고, 산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산악인들은 말한다. 험하고 위험한 산을 오히려 즐겨 찾는것도 그때문이다.
그러나 등반처럼 강인한 단련과 치밀한 준비를 필요로 하는 도전도 없다.
고산준봉을 정복하는데는 훈련과 장비와 재정적뒷받침이 필수적인 것이다.
그것은 결국 재력과 과학기술을 밑받침으로 한 인간능력의 성과인 것이다.
그점에서 근년 우리 젊은 산악인들이 세계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비롯하여 세계도처의 난코스들에 도전, 성공을 거둠으로써 한국산악인의 위신을 높여온 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매우 자랑스런 일이었다.
우리국력과 과학이 우리젊은이들의 용기와 체력을 고무하며 이만큼 발전해왔다는데 대한 우리자신의 자긍이 현실적으로 확인되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그런 성공 가운데서 자주 산악사고의 불행한 소식이 끊이지 않는것에 적잖은 애도를 갖게된다.
이번 히말라야등반대의 이정대씨 조난에 접하고는 더욱 그점을 통감케 된다.
「산사나이」이정대씨의 조난에선 우선 그런 위기가운데서 동료를 희생시키지 않기위해 스스로 자일을 푼 이씨의 초인적인 희생정신이 돋보인다.
절대절명의 순간을 맞아 산사나이 이정대씨는 의식이 몽롱하고 체력조차 탈진된 상태에서 동료만은 살리려는 엄숙한 인간애를 선택하고 있다.
이는 산이 좋아 산을 찾는 산사나이의 충직과 우정을 너무도 비장하게 보여준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버둥대고, 자기를 구하러오는 사람마저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 보통 인간의 행동이거늘, 자기의 죽음을 초연히 받아들이고 동료만은 살아돌아가도록 행동한 것에서 장엄한 순교자의 모습을 보게한다.
이는 우리 한국산악인의 장하고 고귀한 정신적 사표로서 영원히 간직되고 계승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어찌 산악인 뿐이랴.
인세에 태어나 삶의 길을 가는 우리모두의 귀한가르침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산악조난자체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신중한 조사 대처의 계기로서 이번 사고가 인식되어야겠다.
우리 산악인들이 자신과 요행을 과신한 나머지 산악등반에 필수적인 사전준비에 소홀하지 않았나하는 점도 반성되어야겠다.
왜냐하면 우리 산악인들은 77년 알프스에서 유재원씨, 79년 매킨리에서 고상돈·이일교씨, 그리고 올해 1월에 안데스에서 김룡환씨, 바로 보름전엔 알프스 아이거에서 신건호·주동규씨가 조난해 목숨을 잃고 있기때문이다.
이중엔 산사태를 만나 불가항력적으로 조난하는 경우도 있으나 또 적지않게 마음의 자세로부터 장비와 훈련에 이르기까지 유누점이 있었으므로 조난한 예도있다. 산악전문가들은 평지훈련과 사전준비가 등반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높은 고도에서의 등반사고는 흔히 판단착오에 기인하는 것으로 충동적으로 오르고 내리는것은 주의깊게 생각해야하는 것이다.
악천후속의 동상이나 산소결핍에서오는 육체적 결함에 대해서도 사전에 충분히 대비해야 했다.
산을 찾고 산에 도전하는 것은 알피니스트의 기본정신이다. 그들은 험난한 길을 택해 그것을 인내와 기술로 극복하는 용기속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런 도전의 용기는 산에 대한 외경심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산사나이」이정대씨의 숭고한 죽음에 경의를 표하면서 아울러 우리 산악인들의 조난에 대비한 치밀한 사전 노력을 당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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