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봉사단원들과 현지주민 좌담 양평 음성나환자촌서|설익은「농촌계몽」식 벗어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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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불볕 더위 속에 대학생들의 농촌활동이 한창이다.
전국 1백58개 대학(교육·전문대포함) 2만5천 여명이 6백51개 농어촌에서 의료활동을 비롯, 야간학교운영을 기술·근로봉사로 땀흘리고 있다.
학생들은 뙤약볕 아래에서 노동의 신성함을 배우고 시골어린이들과 노래하며 춤추는 한때를 보내면서 경험 못했던 인간가족의 애환을 피부로 느끼고있다. 음성나환자정착촌인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석곡1리「상록촌」에서 지난13일부터 봉사활동을 펴고있는 고려대가 카톨릭학생회 회원들을 찾아 대학생 봉사활동의 실상과 허상을 들어본다.
박종=「상록촌」일손 돕기는 불우한 사회계층과 만나 소외감을 덜어 준다는데 남다른 뜻이 있읍니다.
나환자 정착촌이라 해서 서먹하던 발길이 열흘 동안에 정들어 정작 떠나자니 아쉬운 느낌입니다.
이규=회원 51명이 근로부·종교교육부·농민조직부·부녀부 등 4개 반으로 나누어 하천제방쌓기·부녀교실·유아원·여름성경학교 등을 운영, 겉보기엔 그런 대로 해냈다는 기분입니다.
정=특히 근로부 30명이 마을하천제방 1백80m 신축공사를 마무리 한 것과 가톨릭 기도 제단인「14처」를 완성한 것은 무엇보다도 뿌듯합니다.
고(주민대표)=무더위 속에 참 고생 많았습니다. 처음엔 70도 경사의 가파른 산 위에 높이 70m 길이50m의 돌계단「14처」를 만든다기에 주민들은 반쯤이나 해낼까 하고 반신반의했읍니다. 이렇듯 훌륭하게 만들어놓은 것을 보고 모두 놀랐답니다. 특히 가톨릭 마을인 이곳에「14처」를 쌓아준 고마움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신=사실 새벽5시 기상하여 밤엔 불까지 밝히고 밤11시까지 꼬박 산을 오르내리는 작업은 쉬운게 아니었어요. 대부분 발이 부르트고 손을 다치는 등 상처투성이가 됐으니까요(붕대를 감은 손을 내보인다).
박종=활동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기분이 들지요.
문봉=주민들과 함께 일을 하며 어느 정도 상호 이해의 창문은 열렸다고 하지만 이들이 겪는 실질적인 아픔의 깊이를 열흘의 짧은 기간에 전혀 잴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방학 한달을 모두 이들과 함께 생활해도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50일 방학기간 중 열흘이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라고 봐요. 또 이곳은 83년까지 3년 동안 계속 찾아올 곳이어서 올해 못다 한 것, 고쳐야 할 것은 내년·내후년에 마저 해야지요.
책읽기·취직시험공부, 특히 요즘 더욱 극성인 영어회화하기(웃음) 등 할 일이 산더미 같이 많지 않습니까.
조=문교부에서 보조금 지급해주는 상한일자가 1주일이라면서요. 아마 1주일 이상은 하지 말라는 것도 같아요.
문종=보조금 얘기가 나왔으니까 사업비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겠어요. 이번에 사업비가 1백50여 만원이나 들었어요. 우리가 구걸하다시피 찾아다니며 얻어온 몇몇 출판사의 책과 의약품은 제외하고 공사 자재비·어린이 간식비·회원주식비·교통비·부녀교육에 필요한 간단한 실습재료 구입비·교재비 등에도 빠듯한 실정이었어요. 노력봉사 이외엔 사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박종=학교와 문교부의 보조 13만4천5백원은 전체비용의 10%쯤 밖에 안돼 너무 인색한 느낌입니다. 우리 모임의 경우 사업비 중 50%쯤을 졸업한 선배들이 지원해 주어 큰 보탬이 됐지만 학생들 힘만으로의 모금·회비 염출은 무리한 일이에요.
문종=일부 회원은 아르바이트로 회비를 충당하기도 했죠.
임=대학생봉사는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대접 받으러온』『남녀가 놀러온』『도시 물을 농촌에 오염시키는』등 비판을 받고 있읍니다.
정=충분한 사전답사와 그에 따른 활동비 마련·기초자료수집연구 등 사전준비가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지요. 지금까지 농촌봉사가 실패한 것은 70년대 이후 농촌경제도 많이 향상됐고 그에 따른 커다란 변화가 왔는데도 학생들은 여전히 50년대와 60년대식의 계몽·근로위주의 시대에 뒤떨어진 활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문종=농민들도 의료봉사·농기계 수리 팀 등 직접적인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면 처음부터 거부반응을 일으키죠. 근로봉사도 보다 많은 예산과 규모가 큰 공사를 해주길 바라는 정황이에요. 사실 전문기술을 많이 터득한 요즘의 농촌을 찾아가 영농지도를 한다는 것도 우습고 주택 개량된 곳에서 주택문제 운운하는 것도 난센스죠.
이복=육아에 전혀 경험 없는 저희들이 어머니들을 상대로 한 육아교육을 실시했으니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일이에요. 전혀 답변드릴 수 없는 질문을 받고 얼굴이 홍당무가 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에요.
박종=몇 해 전엔 보수적인 유교마을인줄 모르고 뒷 개천에서 벌거벗고 목욕을 하다 마을 할아버지한테 단단히 혼이 난적도 있죠. 많은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학생들도 배우러 오는구나 하는 면에서 이해하고 잘 받아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의 이번 활동에서 얻은 성과를 비롯, 하계봉사전반의 효과 면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신=저는 처음 봉사를 나왔고 처음으로 삽질을 해봤어요. 1시간을 계속해서 일하기가 힘들었어요. 축구 등 공놀이라면 반나절을 뛰어도 피곤한 줄 모르던 저로서는 노동의 힘듦을 새삼 느꼈읍니다.
그래도 제딴엔 하루9시간의 중노동을 해낸 셈입니다. 나를 스스로 혹사시키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기도제단이 완성됐을 때의 희열과 마을 아저씨들이 가끔 권할 때 땀을 씻으며 들이키던 막걸리 맛은 제 평생 잊혀질 것 같지 않아요.
장=처음엔 우리를 몹시 경원하던 주민들과 친숙해진 것도 큰 성과라고 봐요. 당초 사회로부터 소외돼 있는 이곳 주민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불어넣어 주자는 것이 이곳을 찾은 목적의 하나였잖아요.
이 마을은 음성나환자들만 모여 사는 특수마을입니다. 성경에도 많이 나오지만 나병이라면 가장 무서운 병 아니겠어요. 그러나 이들은 현재 전신에 많은 상흔을 남겼을지언정 완치된 사람들이죠. 과학적으로도 이들로부터의 전염은 전혀 없는 것으로 판명됐고. 주민 모두의 가슴엔 쓰라린 투병의 응어리가 맺혀있는데도 사회에서조차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 같아요. 소외로부터 동참시키려는 노력을 이번 기회에 더욱 다져봅시다.
고=사실 학생들이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오히려 반감까지 가졌었습니다. 멀쩡한 육신의 우월감만 떨치고 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러나 만나는 순간 우리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고 이해의 눈길을 보내주는데부터 완전히 달라졌읍니다.
참석자
◇주민대표 고귀당(47)
◇정리=허남진 기자
▲박종현(22·농화학과3년)
▲이규은(22·여·간호학과3년)
▲박환성(27·경영학과3년)
▲정홍단(27·기계공학과3년)
▲신영규(20·의예과1년)
▲이복규(21·여·독문과2년)
▲문봉성(22·경영학과3년)
▲임철빈(21·금속공학과2년)
▲조남호(21·경영학과2년)
▲문종원(22·국어국문과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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