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공산당 비상 전당대회 결산|"민주실습" 일단은 성공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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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그것은 한주일에 걸친 민주주의의 실험이었다. 정문위쪽에「스탈린」의 이름이 새겨진 바르샤바의 문화궁안 폴란드공산당 (통일노동자당) 제9차전당대회장에서 벌어진 일들은 어느때 어느곳의 공산당대회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당지도층의 민주선거, 대회과정의 공개와 TV중계, 정파간의 솔직한 비판과 토론, 예측못한 상황전환 적어도 겉보기에는 훌륭한 민주실습이었다.
1천9백55명의 전국대의원들이 지난 14일부터 20일까지 때론 솜씨있게. 때론 서투르게, 그러나 한결같은 열기속에서 치른 이 실험은 결국 예상대로「스타니스와프·카니아」의 재집권과 온건개혁을 주장하는 중도노선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대회는 당지도층을 거의 갈아치우고 위기를 빚은 책임자들을 쫓아냈으며 새로운 당헌과 정책을 마련함으로써 한돌을 맞은 폴란드 사태에 하나의 전환점을 찍었다.

<지도층의 대폭개편>
이번대회의 가장큰 특징은 모든 당간부를 민주적 절차로 뽑았다는 점이다. 당의 의회격인 중앙위원회와 최고지도자인 제1서기는 대회총회에서, 정책결정기관인 정치국과 중앙위의 행정담당기구인 서기국은새중앙위에서 뽑았다. 당지도부가 미리 결정한 명단을 대의원들이 「만장일치」의 거수로 채택하는 공산당대회의 관례와 달리 선거는 모두 정원보다 많은후보, 비밀투표방식에 따랐다.
각계층 당권들의 폭넓은 참여를 위해 정원을 1백42명에서 2백명으로 늘린 중앙위원선거에서 후보로 나선 9명의 정치국원 (대회전까지의) 중 친소보수강경파인 「다데우시·그라브스키」와 「안드레이·자빈스키」, 「헨리크·야브오니스키」(국가원수), 그리고 보수중도의 고참정치국원 「미에치스와프·모차르」와 경제담당부수상「미에치스와프·야기엘스키」등 5명이 대의원 과반수의 신임을 얻지못하고 무더기로 떨어졌다. 정치국원 11명중 2명은 대의원선거에서 이미 탈락했으므로 집권층에 남은것은 불과 4명, 「카니아」 와 「야루젤스키」수상, 「카지미에지· 바르치크프스키」등 중도개혁파와 온건보수성향의「스테판·올쇼프스키」뿐이다. 한편으론 전정치국후보위원이며 급진개혁파인 「타데우시·피시바흐」도 탈락하고, 대회 벽두에 개혁을 고무하는 연설로 갈채를 받았던「라코프스키」부수상조차 중앙위원으로는 가까스로 당선됐으나 따놓은 당상으로 여긴 정치국에는 끼지 못했다.
이같은 이변은 좌우 어느쪽의 극단주의도 원하지 않는 대다수 대의원들의「중도선택」의결과였다. 이정도의 변동은 소련을 자극할까봐 「카니아」조차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함께 구정권의 때가낀 당료들을 내몰고 당의 아래쪽에서 새로운 인물을 내세우려는「아래로 부터의 간당」 의지도 뚜렷이 나타났다. 중앙위원 1백42명중 대의원으로 당대회에 참석한 수는 42명. 이중 18명만이 재선돼 옛중앙위는 거의 전멸했다. 지방 당간부들도 밀려났다. 49명의 지방당 제1서기중엔 8명만 당선됐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3백만 당원중 1백만을 차지하는 자유노조원들을 대표해 40명의 자유노조 소속 중앙위원이 선출됐다. 정치국에도 자유노조원인 「조피아·그지브」여사가 최초의 여성정치국원으로 참여했다.
19일 중앙위에서 뽑은 정치국과 서기국에도 「새 인물」과「중도개혁」의 성격은 그대로 적용된다고 15명으로 4명이 늘어난 정치국원중「카니아」등 재선된 4명과 행정부 장관출신2명을 뺀 9명이 중앙당과는 별관계가 없었던 신인들이며, 이중 4명이 노동자, 2명이 대학교수다. 또 7명의 당서기중 기존인물은 정치국원 겸임의 「바르치코프스키」와 「올쇼프스키」등 2명뿐이다.

<카니아와 새정치국>
간부총이 몰살되는 대변혁속에서도 당의 기본적인 방향을 지킨 것은「카니아」 「야루젤스키」「바르치코프스키」로 얽어지는 중도세력이다. 이번 당대회는 사실 구집권 세력을 위기의 책임을 물어 몰아내고 이들의 수권을 당의 이름으로 확인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대회초반에 당 제1서기에 무난히 재선되리라고 예상됐던「카니아」 는 민주주의를 만끽하려는 대의원들의 주저와 강경파 반격의 일환인『「고물카」서한』의 파동속에서 선거가 늦어지면서 입장이 조금 약해지는 듯했으나 중앙위선거에서 중도파가 압승하고 경쟁상대들이 대거 탈락되는 바람에 손쉽게 재선됐다.
형식적인 경쟁자인「바르치크프스키」와의 표대결(1천3백11표대5백68표)은 대회 흐름에 비해 「비민주적」이란 평이 나을만큼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재선은「사회주의적 오드노바(재생)」, 즉 중도개혁 노선에 대한 당의 공식적인 지지를 뜻한다. 「카니아」 는 지난해 9월 집권한후 보수파와 개혁파, 소련과 자유노조를 모두 달래는 아슬아슬한 중도노선을 걸어오면서 이데을로기 보다는 정치기술에 능한 노련한 지도자란 평을 받았다. 자유노조와 6백건의 협상을 했으면서도 소련의 개입을 피해온 사실은 확실히 그의 정치력을 말해준다.
그가 이끌 새정치국은 이같은 중도개혁노선의 추구에 보다 협조적일것으로 보인다. 소식통에 따르면 15명의 정치국원중 중도 노선지지의사를 나타낸 사람은 「카니아」를 포함, 10명이나 된다. 게다가「그라브스키」등 강경파 거물들이 모두 탈락하는 바람에 실질적인 반대세력이 없다. 한때 강경했던 보수파「올쇼프스키」는 요즘 온건쪽에 가까와지고 있으며 이번대회에서 개혁을 비난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고해 두각을 드러낸 신임정치국원「알번·시바크」는 아직은 무게가 없다. 그러나 중앙위의 경우는 다르다. 개혁파「라코프스키」전부수상의 정치국 탈락사례에서 보이듯 새중앙위의 성격은 아직은 가늠할수 없다.
중앙위의 잠재적 강경세력이 정치국의 소수파와 합세할 경우 「카니아」는 새로운 도전을 받을수도 있는 것이다.

<대소관계와 대노조전망>
「카니아」는 당선직후 소련의「브레즈네프」서기장의 축하 전문을 받았다. 요몇달동안 소련이 「카니아」의 실각을 노골적으로 바랐던 사실을 생각하면이 친절은 이례적인 것이다.
그러나 소련으로선 지금 상황에서「카니아」가 그래도 가장 나은 상대일 수 밖에 없다. 대리인이었넌던 소강경파들은 모두실각했고 소련은 당장 뾰족한 대처방안이 없다.
소련이란 공동의 적을 의식하고 맺어진 정부와 국민간의 잠정적 양해관계도 적어도 당분간은 계속될 것 같다.
노조는 새지도층의 성격을 좀더 뚜렷이 알수있을 때까지는 사태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킬 움직임은 하지 않는, 일종의 유예기간을 주리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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