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신체는 기상 변화에 민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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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기상변화는 인간사를 변화시킨다. 크게는 전쟁의 승패에서, 작게는 기분에 이르기까지 기상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1777년 1월 미국독립전쟁 중 조지·워싱턴군은 겨울답지 않은 따뜻한 날씨 때문에 수렁 길에 묶여 진지에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바람이 갑자기 북서로 변하면서 길이 꽁꽁 얼어붙었기 때문에 워싱턴군은 얼음을 이용해 수렁을 빠져나와 영국군을 기습,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 승리는 미국독립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소련의 폭설과 혹한을 너무 경시하다가 참패를 맛보았다.
1944년 2차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기상의 덕을 본 대표적인 예. 아이젠하워 장군은 기상학자들의 건의에 따라 6월6일 상륙을 강행했다. 하늘에는 이슬비가 뿌리고 바다는 파도가 높은 어두컴컴한 날씨였다. 독일군은 이런 날씨에 연합군이 상륙해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해 소홀한 경계를 펐고, 그 덕택에 작전은 성공했다.
이런 사건 뿐 아니라 기상은 인간의 정서생활에도 깊이 작용한다. 날씨에 따라 범죄나 건강상태가 변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미 FBI통계에 따르면 무더운 여름에는 겨울보다 훨씬 많은 범죄가 발생하고 있는데 특히 무덥고 긴 여름은 범죄의 최다 발생시켜와 일치하고 있다.
폭동발생도 날씨와 관계가 있다는 보고도 나와있다. 미 예일대학의 헌팅턴 박사는 1919∼41년 사이 인도에서 일어난 1백48건의 종교폭동 중 3분의 1이상이 1년 중 가장 불유쾌한 시절인 4월과 8월에 일어났음을 밝혀냈다. 바람이 없고 공기가 눅눅한 무더운 날에 폭동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5, 6월에 폭동이 적은 것은 계절풍이 서늘한 바람과 소나기를 몰고와 열기를 식혀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67년 미국뉴욕 이스트할렘에서 일어난 최악의 인종폭동도 기상학적으로 상당히 의의가 있다. 폭동은 7월23일부터 26일까지 4일간 발생했는데 이 기간은 그야말로 지겨운 날씨였다.
이 때는 평년보다 섭씨 1∼5도(이하 섭씨)나 높은 날씨로 최고기온이 30∼32·2도를 오르내렸다. 특히 23일엔 77을 넘는 불쾌지수가 8시간 계속됐고, 24일에는 80이상의 불쾌지수가 6시간 계속됐다. 미국인의 경우 75이상이면 50%가 불쾌감을 느끼고, 80이상이면 모두가 느낀다.
여기에 비는 오는 등 마는 등 했고 바람조차 없어 체온이 제대로 발산되지 못했다.
반면 폭동이 일어나기 2일 전은 평균보다 4∼5도 낮은 서늘한 날씨였고 75이상의 불쾌지수도 2∼4시간 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폭동이 수그러든 27일부터는 기온이 30도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해 28일의 기온은 평년보다 2도나 낮았다.
질병과 기상의 관계도 대단히 깊다. 과학자들은 기상변화에 신체가 민감히 반응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맥박·혈압·호흡수 등 생리기능의 변화가 기상변화와 일치한다. 다음은 주요 질병에 대한 기상의 영향.
▲결핵=찬 안개가 끼거나 갑작스레 따뜻한 대기에 접하면 객혈이 증가.
▲기관지 천식=갑작스런 찬 날씨와 접하면 증가한다. 여기에 기압이 멀어지거나 바람이 부는 것과 겹치면 더욱 심해진다.
▲기관지염=대기가 오염된 지역에 안개가 끼면 환자가 급증.
▲피부암=일조시간과 피부노출이 심할 때 증가.
▲관절염=강한 바람과 추운 날씨에 악화된다. 습도는 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관상동맥혈전증·염심증=추운 날씨에 사망률이 높아진다.
한편 국내에서 기상의 사의· 보건측면의 연구는 ,전무한 형편으로 중앙관상대 기상연구소 김문일 연구원은 『79년 기상자료로 연탄가스 중독예보지수를 개발한 것 외에는 이 방면의 연구가 너무 부진하다』고 지적했다. <장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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