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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훈 명인의 본인방 차지 박재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무더위가 계속돼 신경질만 솟게하고 있다. 그런데 가슴이 후련해지는 소식을 조치훈 명인이 현해탄 저쪽에서 전해 주었다. 그가 본인방이란 타이틀을 「다께미야」(무궁지수) 9단으로부터 토틀스코어 4대2로 빼앗은 것이다. 한 줄기 소나기를 만난듯한 후련하고 신나는 감회에 젖는다.
이로써 그는 빅타이틀 셋 중에서 둘을 손에넣는 장거를 해낸것이다. 「명인」에다「본인방」이 그것이다. 그 둘 타이틀을 동시에 취득한 사람은 「사까따」(판전영남) 9단과 중국이 낳은 임해봉9단과「이시다」(석전방부) 9단에 이어 그가 네 번째다. 그만큼 동시에 그 두 타이틀을 차지한다는 것이 어려운데, 그는 그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바둑으로 대성하는데 부모가 노력한 것은 묻히고 있다. 그의 아버지 조남석씨는 조남철8단의 친형이다.
7년쯤전 하루는 그아버지가 내개 할말이 있다면서 종로2가의 어느 다방으로 불러내었다.
이야기의 요점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 치훈은 사춘기를 맞고 있는데 이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다. 여자에게 빠져버리면 바둑이고 뭐고 다그만이다.
그래서 나더러 팬이라 하면서 편지를 한통 써서 보내 달라는 것이다. 나는 즉석에서 그러마 했다. 평소에 나는 그와는 일면식이 없었다.
그 편지에서 나는 시를 쓰고 신문에 바둑관전기를 쓰는 신분부터 밝혔다. 그 문면의 요긴한 대목에서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를 쓸때 전심전력을 쏟는다. 이 세상에서 시를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 많은 사람중에서 주역이 되고 싶지 단역이 되고 싶지 않다. 당신도 바둑에서 주역이 되어야 한다. 고국의 전체 팬들은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춘기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바둑전에 인생이 패배해서야 되겠는가 그 편지를 받고 그는 겸손하게도 회답을 했다. 『정말 고맙다. 열심히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한 그가 승승장구하는 것을 곁에서 보고 있자니 기쁘기 한량없다. 송무백열의 경지를 경험하는 느낌이다.
이제는 그에게 한동안 따라다니던「천재소년기사」라는 호칭도 완전히 떼어 버렸다. 명실이 다함께 일본바둑계에서 최고봉을 차지한 헌헌장부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에게 있어 사춘기의 고뇌도 이제는 말끔히 가셨다.
그는 56년생, 62년에 도일했으니 꼭 20년만의 일이다. 그가 처음 일본에 갔을때 「기따니」(목곡실) 9단의 문하생 백단돌파기념대회가 있었다. 그때의 사진에는 그가 그의 형 무릎에서 잠자고 있는 모습이 눈에 뛴다. 그때 그는 임해봉 9단(당시 6단)과 다섯점 접바둑으로 거뜬히 이겨 많은 팬들을 열광케했다. 그렇게 어린그가 어느새 바둑세계에서는 장자가 되어 그 걸음이 코끼리의 보법 그것으로 놀랍기만 하다.
그 앞에서는 시간은 그냥 흘러간 것이 아니다. 뜻을 새기며 빛을 내며 흘렀다. 그때의 그 편지를 생각하며 나는 유감해지지 않을수가 없다. 참으로 그는 무엇에게도 지지않고 꿋꿋이 한국청년의 기개를 보여준 것이다. 『조치훈만세!』 이렇게 외쳐서 부끄러움이 없다.
세졔제패는 한두번 아니게 겪은 우리들이다.·탁구·권투·레슬링등 이루열거할수 없다. 그러나 두뇌의 스포츠라할수 있는 바둑에서 세계최강을 차지했다는 것은, 그의 명예를 넘어서 조국의 자랑이 아닐수 없다. 국내에서는 조대현8단, 서봉수7단이 있고, 국외에서는 조치훈9단이 있다. 실로 우쭐할만큼 든든하고 미더운 생각이 든다. 이들이 다같이 팔팔한 20대라는 것은 우리 바둑의 창창한 앞길을 예시해주는 것만 같다.
말할 나위도 없이 바둑은 만인이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추어의 세계고, 프로의 세계에 오면 즐거운 것을 넘어서서 뼈를 깎고 피를 말리는 고항이 스스로 따른다.
얼마전 그가 한국에 와 대국을 가진 바 있다. 그때 그는 마치 수도하듯이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국전무인의 경지를 보는 느낌이었다.
내가 말할수 있는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즉 프로는 승부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다. 이기고 지는것만 있다. 그들은 상대에게도 이겨야 하지만 자기자신의 흔들리기 쉬운 마음을 잘 가누어야 한다. 조명인은 일본에서 그의 이 별명이 있다.
그는 혼신으로 부딪쳐 간다는 뜻에서「혼신」이다. 그는 타고난 두뇌도 선천적인 것이지만 후천적으로 끝없이 노력하고 추구하는 것 또한 엄청나다.
그는 바둑에 진 날은 울면서 혼자 어두운 밤길을 간다는 편지를 그의 아버지에게 토로했었다. 승패는 병가상사고는 하나 조명인 그는 바둑에 졌을때는 그 억울함이 남달리 강했다. 아, 그것이 그를 무적으로 만드는 요인이었던가.
그의 본인방 취득에 흔연작약하는 것은 전국민이다. 이렇게 만복의 기쁨을 누려 모자람이 없다. 갑자기 세계가 좁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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