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준연구소 정광화 박사-"양질의 측정 능력은 과학 수준의 척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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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질량의 정확한 측정 능력 없이는 과학의 발달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적게는 시장의 상품 거래·수출입, 크게는 항공우주산업·방위산업·원자력·공해 측정·화학에 이르기까지 질량의 측정 능력이 바로 성패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할까요.』
충남 대덕의 전문연구단지 안에 넓게 자리잡고 있는 한국표준연구소. 이곳 질량표준연구실장 정광화 박사(33·물리학)는 박사란 호칭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아직 앳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 학문에 대한 정열도 대단하다.
쉽게 말해 무게를 정확하게 알아내도록 하는 것이 정 박사의 연구 과제.
질량 비교기·부피계·표준 부피계·각종 분동(저울의 추도 분동의 한 종류다)·밀도 측정기·정수 형량기 등 질량 연구에 필요한 각종 실험기구가 있는 실험실은 실험 기구의 안전 관리를 위해 실내온도 20도C를 늘 유지하고 있어 약간 싸늘한 느낌을 준다.
『측정 기술과 과학의 발달은 서로 보완하며 발달해 가기 때문에 이 실험실 안의 측정 능력이 바로 한국 과학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습니다.
표준연구소의 과업 하나가 표준의 확립과 유지인데 이미 질량에 대한 표준은 확립했고 이젠 부피·밀도·압력 분야에 대한 표준을 확립하고 있는 중이지요.』
실험기 하나 하나의 성능과 용도를 설명하며 정 박사는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먼저 일깨워 주려 한다.
경기여고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정 박사는 석사·박사학위를 미 피츠버그대학교에서 받았다. 물리학은 여고시절부터 흥미를 가졌던 학문으로 별 망설임 없이 전공으로 택했고 지금도 그 선택에 만족하고 있다.
연구소는 실력으로 비교되는 곳이라 여자라서 어려움을 겪는 일은 별로 없다. 오히려 차분히 앉아 연구한다는 것이 여성에게 걸맞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정 박사의 말.
질량은 마이크로 그램의 미세한 단위도 측정할 수 있어야 하지만 원유와 같은 큰 덩어리를 정확하게 재는 대용량의 연구도 시급하다.
『솔직하게 말해 아직 우리나라는 대용량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기술이 발달돼 있지 않아요. 중동에서 원유를 도입해 올 때 과연 얼마나 정확한 분량을 받아 오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이 때문에 질량연구소에서는 곧 대용량의 표준 확립 연구에 들어간다.
비행기 프로펠러의 중량도 정밀을 요구하는 것이다. 프로펠러 관성능률측정기의 교정 의뢰를 비롯, 각종 질량기의 교정 의뢰도 받고 있다.
연구와 질량기 교정 등 연구소 일에 바쁘면서도 정 박사는 가끔 충남대학에 강의도 나간다.
재미시절 같은 물리학을 전공한 남편 정규수씨(회사원)와 결혼, 두 딸을 두고 있는 정 박사는 부부가 전공이 같아 이해의 깊이가 오히려 깊다고.
대전에 집이 있는 정 박사는 통근차로 시골 풍경 속의 연구소로 출근한다. 대부분의 샐러리맨과는 달리 낮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연구에 몰두하나 저녁엔 도시의 번잡함 속에 들어가 자녀들과 함께 그런 대로의 잡담함과 가족적 분위기의 안락함을 즐긴다.
스스로 몰취미라고 말하는 정 박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의 일, 연구소의 일과 집안에서 맡은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가장 잘해내도록 노력하는 것이 취미라고 해도 되겠느냐고 반문한다. 바로 일이 취미라는 설명이겠다.
이번 여름휴가에도 그래서 4세짜리와 6개월밖에 안된 두 딸을 위해 집에서 보다 바람직한 어머니 역할을 해 보여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연구소에서 얼마전 질량 표준을 확립한 정 박사는 지금 역학 저울에 대한 책자 발간을 서두르고 있다. 이 책자는 질량 측정에 대한 지침서가 될 것이라고.
연구소 안에서 조금씩 쌓여 가는 연구 실적이 내일의 한국과학을 위한 주춧돌이라는 생각, 바로 그것이 정 박사에게는 오늘의 보람이 된다. <대덕=김징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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