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한국은행의 「현주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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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의 은행자울화방침의 발표이후 시중은행들의 움직임은 제법 활기를 띠고있는반면 은행의 은행이라는 한국은행사람들의 의기는 더욱 소침한 분위기다.
상전인 재무부로부터의 지시나 간섭·감독은 종전보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는 푸념들이다. 지난번 새헌법을 만들때 중앙은행의 독립성보장을 헌법으로 성문화시키려던 시도가 성공일보직전에 재무부의 완강한 반대로 좌절되었던 까닭에 그들의 절망은 더큰것같다.
79년 언저리부터 제기되었던 금융산업 개선방안의 초점은 근본적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보장에 맞춰졌었고 시중은행의 민영화나 자율화 운운은 오히려 그다음 문제였다.
한국은행 자기네들의 주장은 제쳐놓고서라도 국무총리행정조정실·KDI (한국개발연구원)·경제과학심의회·국제경제연구원등 당시 고위층의 지시에 따라 작성한 각 기관의 연구보고서들은 한결같이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이 금융자율화의 첫걸음임을 역설했었다.
공통돤 내용을 간추려보면▲한은총재의 임면권자를 현행 재무장관에서 국무총리로 바꾸고▲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장을 한은총재로하며▲재무부의 한은에 대한 검사권을 폐지하고▲필요한 예산은 금통운위의결만으로 결정토록 해야한다는것등이었다.
사실 한은법개정문제는 그동안 하도 여러차례 거론되어왔던터라 누가 말해도 그말이 그말로 집약될수밖에 없다.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그만큼 당연한 귀결로 여겨지게 된것이다.
그러나 막강 최종단계에 이르자 언제나의 명분처럼 시기상조론에 힘없이 밀려났고 재무부의 고삐줄은 더 팽팽하게 당겨졌다.
공문으로 적혀내려오는 지시뿐만 아니라 사무관의 전화한통화로 업무의 우선순위가 정해진다.
주요 조치가 나울때 마다 금통운위는 발표시간을 다투어 긴급소집되었고 금통위원들은 상정된 안건을 읽어보지도 못한채 통과를 서둘러야했다.
절차는 신속할수록 좋은 것이었다.
역시 황급하게 소집되었던 얼마전 금통운위에서는 모처럼 고함이 터져나왔다.
모 금통위원은 이런식으로 할 바에는 무엇 때문에 금통운위를 여느냐고 따지고 들었다.
『정책의 시비를 가리기위해 회의를 소집했으면 시비가릴 시간을 줘야 할게아니냐. 걸핏하면 보안유지때문이라고 하는데 대통령이 임명한 금통위원에게까지 보안을 해야 하는가-.』
안건을 만들어 올린 한은집행부사람들에게 호통을 쳤지만 사실은 그자리에 참석한 재무부대표더러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한은사람스스로가 통화당국은 자기네가 아니고 재무부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일도 재무부장관 발표사항이지 한은총재가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일이다.
각은행의 예금계수에서부터 시작해 월별통화공급계획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재무부관리들 손에 쥐어져있고 모든 발표를 그들이 도맡고 있다.
사전에 한은이나 일반은행을 통해서 새어나갔다간 불호령이 띨어진다.
정말 보안때문인경우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위계질서의 차원에서 문제삼는다.
누가봐도 현재의 재무부와 중앙은항의 관계는 예속의 관계임을 부인할수없다.
한은임원이 재무부 하급관리에게 불려다닌다고 해서 예속이 아니다. 일의 내용이 수평적인 협조관계가아니라 한쪽은 일방적으로 지시를하고 다른 한쪽은 시키는대로만 하고 있다는것이 문제다.
시중은행을 은행본연의 상업성을 살리기 위해서 자율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논리는 한국은행이야말로 금융본연의 중립성을 보호하기위해서 중앙은행 스스로의 체통을 세워줘야한다는 주장과 조금도 다를바없다.
중앙은행이 독립적인 존재가 된다고해서 그것이 정부정책에 대립되고 시비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지나치게 예속되어 있기때문에 제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예속을 풀고 자율에 맡겨 금융의 효율을 높이자는것이다.
재무부의 보조기관 처럼 느껴지는 곳이 요즈음의 한은이다.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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