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에 휘말린 고교생 구하려다|친구-마을 청년 연쇄 익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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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호우로 물이 불어난 안양천의 가설교를 건너 등교하던 야간부 전문 학생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자 이를 본 다른 남학생과 20대 청년이 차례로 구하러 뛰어들었다가 3명 모두 익사했다.
2일 하오 5시쯤 서울 목동 164 앞 안양천의 희망교를 건너던 이 동네 이범환 군 (18·국제 실업 전문 야간부 2년)이 실족, 급류에 휩쓸리자 뒤에서 따라가던 같은 반 친구 김광복 군 (17)이 이군을 구하려고 물에 뛰어들었으나 폭우로 불어난 물에 말려 함께 떠내려갔다. 이 소식을 들은 김종남씨 (24·목동 164의 2)가 두 학생을 구하려고 뛰어들었으나 역시 급류에 휩쓸려 익사했다.
경찰은 2일 밤과 3일 상오까지 어선 등을 동원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물이 불어 실패했다.

<발생>
이군과 김군은 2일 하오 4시30분부터 시작되는 수업 시간에 늦자 서둘러 학교에 가기 위해 폭우 때문에 50cm가량 침수된 길이 80m·폭 3m·높이 5m의 희망교를 건너던 중 급류에 휘말려 실족, 책가방을 든 채 물 속으로 떨어졌다.
사고를 본 이 동네 김경순씨 (36)에 따르면 이군이 물에 잠긴 다리를 건너려해 말렸으나 이군은 『학교 시간이 늦었다』며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올린 뒤 다리에서 보고는 『건널 수 있다』며 눈어림으로 건너다 다리 중간쯤에서 몸의 중심을 잃고 사고를 당했다고 말했다.

<1차 구조 시도>
이군이 급류에 휩쓸리자 약 5m 뒤에서 따라가던 김군이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이군을 구하려고 책가방을 던진 뒤 뛰어들었으나 함께 휩쓸렸다.

<2차 구조 시도>
두 학생이 물에 휩쓸린 곳에서 3백m쯤 떨어진 집에서 오토바이를 수리하던 김종남씨는 동네 사람들의 고함소리를 듣고 둑으로 달려가 옷을 벗고 강물에 뛰어들어 80여m쯤 헤엄쳐 갔으나 끝내 이들을 구하지 못하고 함께 급류에 휘말렸다.
사고를 본 이 동네 김철씨 (32)는 『김씨가 한참 헤엄쳐가다가 3∼4번 자맥질하여 학생들을 구하는 줄 알았더니 곧 급류에 휩쓸려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학생>
이군은 2년 전 고향인 경기도 여주에서 상경, 서울 염창동 삼광 유리 공장에 취직해 월 7만5천원의 봉급으로 학비를 마련, 야간 학교에 다녔다.
김군은 이군과 함께 직장인 삼광 유리에서 일을 마치고 등교하기 위해 징검다리를 건너던 중 물에 휩쓸린 이군을 구하려다 변을 당했다.

<사고 다리>
사고가 난 다리는 목동 지역 주민들이 폭 80여m의 안양천을 가로질러 영등포 쪽으로 나가는 지름길이어서 평소에도 주민들의 왕래가 잦았는데 장마철이면 잠수교처럼 다리가 물에 잠겨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된 곳.
그러나 이날 김군 등은 이 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학교까지 가는데 약 2km이상을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물 속에 잠긴 다리를 건너다 사고를 당했다.

<김씨 주변>집에서 독학으로 고시 공부
전남 곡성 옥과 농고를 졸업한 뒤 6년 전 상경, 서울 목동에 사는 형 종선씨 (31) 집에서 지내다 입대, 지난해 9월 제대했다.
김씨는 지난 6월 서울시 5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뒤 발령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김씨의 형 종선씨는 동생이 제대한 후 『독학으로 고시 공부를 해서 판·검사가 되어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면서 밤을 새워가며 공부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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