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식인 53명의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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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늘의 세계질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지식인들이 있다.
그날그날 먹고살기에 쫓기는 사람들이나,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사는데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에겐 신선들의 「기우」요, 「헛소리」이며 우리와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의 현재를 걱정하고 지구의 미래에 대해 심각한 반성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나마 인류의 도덕적 질서는 유지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에 노벨상수상자 53명이 선언문을 통해 오늘날의 세계를 『대규모아사로 위협하는 전대미문의 대학살』로 표현 한 것은 그 우려의 표현이겠다. 특히 이들이 세계의 빈민들에게『기본인권을 제외한 모든 법률에 대한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라』고 촉구 한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학살」이 「기아」라는 우회적 수단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데 주의를 환기한 것이 선언의 안목이다. 실상 지금 지구상에서 굶주리고 있는 인구는 적어도 5억에 이르고 있으며, 이는 현존 인류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막대한 수다.
특히 인구1억5천만인 아프리카의 기아는 상상을 절한 상태에 있으며 특히 수단에서부터 남아공화국 국경에 이르는 지역의 6천만 인구는 심각한 기아의 고통속에 하루 1만명꼴로 아사자를 내고있다.
이는 주로 자연재해의 결과다. 최근 2, 3년 사이에 전세계를 휩쓴 기상이변으로 소말리아를 중심으로 한 동부아프리카는 극심한 한발에 시달렸으며, 그로 인해 우물마저 말라 버리는 식수난이 겹쳐 1백만 마리 이상의 가축마저 죽어 넘어지는 사태에 이르렀다.
자연재해만이 아니고 인위적인 재해도 기아를 가속화했다. 이디오피아와 소말리아의 오가덴분쟁에서 생긴 난민을 필두로 우간다·앙골라·루안다·차드 등에서 벌어진 지역분쟁과 내전에서 발생한 난민은 무려 1천만명을 넘고 있다.
기아는 또 아프리카에만 한정 된 것도 아니다. 중국대륙에서도 최악의 가뭄으로 2천만명의 주민이 굶주리고 있다는 외신이 있었으며 브라질에서도 수천명이 떼지어 먹을 것을 찾아나서고 있다. 인도에서도 인구의 3분의1인 2억2천만이 굶주림의 고통을 겪고 있다.
기아문체는 또 현재의 문제만도 아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기아사망자는 20개월마다 2차대전의 희생자수와 맞먹는 5천5백 만 명이라고 한다.
인구의 격증으로 30년후 에는 인류의 극히 일부만이 식량을 얻을 수 있으리란 독일철학자「게오르크·피히트」의 예고도 나왔다.
이런 도찰에서 보면 인류의 기아문제는 「대학살사태」가 아니라고 부정할 근거가 없다. 그러니까 이들이 그 기아의 책임을 국제정치·경제무질서에서 찾고있는 것도 당연하다.
군비경쟁에 광분하고 있는 세계각국이 1분에 평균 1백만달러(약7억원)를 사용함으로써 80년 한햇동안 전세계적으로 5천억달러를 지출했다고 스톡홀롬 국제평화연구소가 밝히고있는 것만 보아도 국제정치의 비이성적이며 비인간적인 측면은 너무도 분명한 것이다.
이 막대한 군사비가 인류의 살상을 예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의 생활향상을 위해 사용되고, 기아의 퇴치를 위해 협조적으로 이용된다면 인류의 죄는 훨씬 줄어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인류는 과학진흥과 산업개발 등 유토피아의 실현을 장담하면서도 불행한 이웃의 아사는 방관하고 방조하고 있다.
이 선언문이 약자들의 조직화된 비폭력의 힘으로 기본인권 이외의 모든 법에 불복하는 투쟁을 촉구 한 것은 인류전체에 대한 양심의 경고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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