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중에 소나무 예찬이 있다.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지거늘/솔아 너는 어찌 눈 서리를 모르느냐/구천의 뿌리 곧은 줄을 그로 하여 아노라.
옛 선비들은 소나무를 절조 장수 번무의 상징으로 기렸다. 『시경』이나 맹교의 『유흥시』,당시인 이상은의 시가에 등장하는 소나무들이 모두 그런 픙채를 하고있다.
송운·송우·송연·송강·송한·송계·송국·송당·송문…등은 시선들이 즐겨쓰는 표현들이다. 이중에는 자호도 있다. 서양사람들이 소나무를 보고 느끼는 심정이 동양인과 비슷한 것도 재미있다.
영국시인 「윌리」는 폭풍을 견뎌내는 「황야의 거인」으로, 「새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안토니오」는 「샤일룩」의 고집을 소나무에 견주고 있다.
서양의 전설이나 문학작품속에 나오는 소나무들도 역시 대청과 계보, 역경속에서의 희망으로 상징되고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라스페기」의 교향시 『로마의 소나무』는 자못 「장엄」의 선율을 담고 있다. 로마의 「빌라·보르게제」공원, 「카타콤베」입로, 「지아니콜로」언덕에 있는 소나무 숲을 교향시로 옮겨놓은 것이다.
진의 시황제는 「대부」의 벼슬을 송위라고도 불렀다. 소나무의 격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에도 속리산 법왕사입구에 「정이품소나무」가 있다. 1464년 세조가 법왕사로 행차할 때 가마(연)가 소나무 가지에 걸려 시종들이 길을 비키라고 일갈했다. 이때 소나무 가지가 넌지시 위로 들려졌다고 한다. 세조는 그 충절에 감복해 정이품을 내렸다.
「송」자는 목과 공의 합자다. 위엄을 나타내는 공·후·백중 제일 윗자리가 공이다. 소나무를 많은 수목가운데서 그만큼 윗자리에 놓은 것이다.
정조의 고사도 있다. 지금의 수원시 북문밖에 있는 노송들은 그러니까 2백년도 더 된 나무들이다.
이 소나무주변엔 그 무렵에도 많은 인가들이 있었는데 겨울이면 주민들이 땔나무 감으로 그것을 마구 잘라갔던 모양이다.
어느 날 정조는 섭전을 노끈에 꿰어 이 소나무 가지들에 매달아 놓았다. 생소나무를 베지말고 장에 가서 땔나무를 사라는 돈이다.
소나무를 영어로는 파인(fine)이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목양신 「판」의 연사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요즘 1백50년도 넘는 노송 한 그루가 「개발」의 발길에 채어 시흥의 오봉마을에서 용인자연농원으로 이직되었다. 12개의 줄기가 의연하게 뻗은 반송(multicaulis). 40t의 원생지 흙을 실어나르는 등 그것은 대역사였다. 노인을 모시듯하는 정성으로 보아 워낙 고집스러운 소나무이긴 하지만 살 것도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