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추석엔 달을 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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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성인이 된 후, 달을 5분 이상 바라본 건 일본 유학 시절이 처음이다. 이국에서 가족 없이 홀로 보낸 추석, 기숙사 창밖에 뜬 보름달은 엄청나게 크고 밝았었다. “이상해, 일본 달이 한국 달보다 훨씬 큰 것 같아”라는 감상을 말했다가 이과 친구에게 핀잔을 듣고 만다. “달과 지구의 거리가 38만㎞인데, 서울과 도쿄의 거리는 1000㎞ 조금 넘을걸? 달의 크기가 다를 리가 있겠어. 아마 네 마음에 구멍이 크게 났나 보다.” 친구의 얼토당토않은 ‘마음의 구멍’설은 이후 상당한 신빙성을 획득하게 되는데, 외로운 유학생들이 ‘나도 실은 일본 달이 한국 달보다 크다고 느꼈어’라는 증언을 잇달아 내놓으면서다.

 달은 원래 지구의 한 부분이었다고 한다. 지구가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화성 크기의 천체 ‘테이아’와 충돌했고, 당시 지구의 일부가 부서져 흩어졌다. 이 파편들이 뭉쳐 달이 됐다는 설이 과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대로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지구처럼 태양의 빛을 반사해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태양빛을 받는 면적에 따라 모양이 바뀐다. ‘달의 이면’이란 표현은 미지의 영역, 숨겨진 자아를 상징하는 단어로 예술작품에도 자주 사용되는데 달의 공전 속도와 자전 속도가 거의 같아 지구에서는 언제나 달의 한쪽 면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1959년에 소련이 처음으로 탐사선 ‘루니크 3호’를 이용해 달의 이면 촬영에 성공했다).

 천문학자 이명현씨가 쓴 『이명현의 별 헤는 밤』이란 책에는 이런 아름다운 대목이 있다. “살다보면 달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격렬한 어떤 사연을 공유한 사람, (…) 끝없는 배려를 해주는 사람, 한쪽 면만 보여주지만 그것이 나를 위한 동조 과정의 결과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사람, 나 자신의 모습을 반사하듯 내게 보여주는 사람, 그러면서 늘 옆에 있는 사람, 하지만 멀리 떨어져서 지켜만 보는 사람….”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누구의 달입니까?’

 추석은 ‘달의 명절’이다. 다행히 이번 추석에는 날씨도 맑고, 올해 두 번째로 큰 보름달을 볼 수 있을 전망이라 한다. 이번 명절엔 “좋은 데 취직해야지” “만나는 사람은 없니” “어렸을 땐 참 예뻤는데” 이런 덕담(?)은 잠시 멈추시고 함께 달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원래는 나의 한 부분이었던, 그리고 지금도 늘 옆에서 나 자신을 반사하듯 보여주는 사람들, 가족과 함께.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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