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갈래의 옛 동서 교통로 외에 『사라센·로드』도 있었다|전국 역사학대회 주제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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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금년 상반기 역사학 연구활동을 총 정리하는 제24회 전국역사학대회(준비위원장 유홍렬)가 19, 20일 이틀 동안 인하대에서 열리고있다.
이 대회는 『동서문화의 교류』를 공동주제로 황원구 교수(연세대)가 『교통로와 그 주변』, 최석우 신부(교회사연구소)가 『한국천주교수용을 중심으로』, 박성래 교수(외국어대) 가 『한 중 일의 서양과학 수용』, 김리나 교수(홍익대)가 『불상양식의 동점을 중심으로』를 각 각 발표했으며 한국사부·동양사부·서양사부·경제사부·역사교육사부·고미술사부·과학사부로 나뉘어 40여명의 학자들이 연구발표에 나섰다. 공동주제발표 중 황 교수의 발표내용과 관심을 모은 이인호 교수(서울대)의 『세계사교육의 방향』, 이부영 교수(서울대)의 『원시적 질병관의 상징성』을 요약 소개한다.
황원구 교수(연세대)는 지금까지 통설로 돼오던 동서교통로인 3S 즉 『초원의 길』(Stepp-road), 『비단의 길』(Silk-road), 『향료의 길』(Spice-road)에 『대식의 길』(Saracen-road)을 추가해 4S설을 주장했다.
「사라센 로드」는 대식인이라고 알려졌던 사라센 사람들이 15세기에 개척한 통로로 페르시아만에서 인도양과 말래카 해협을 지나 남양군도와 남중국의 여러 항구에 이르는 동서 해양통로를 말한다는 것이다.
이 통로를 통해 이슬람세계의 발달된 수학·천문학·지리학 등 사라센문화와 남양에서 생산된 향료가 들어왔으며 조선 세종의 과학도 사라센 문화의 영향이라고 황 교수는 밝혔다.
황 교수는 동서문화 교류가 질량 면에서 오랫동안 계속돼왔지만 3천5백여 년의 오랜 문화전통을 갖고 있는 중국대륙에 정착한 서방의 문화사상은 놀 날만큼 적다고 전제하고 오늘날 상황에서 보면 이란문화계의 이입과 함께 전래된 불교와 근대기에 들어온 공화정체 및 이데올로기만이 뿌리를 내렸다고 결론지었다.
최석우 신부는 중국에 상주해 있던 서양 선교사들이 보낸 한역 서학서를 통해 처음 천주교가 이 땅에 들어올 때는 당시에 활발히 일고있던 실학과 연결돼 순조롭게 수용됐으나 위정자와 주자학자들의 탄압을 받게됐고, 이에 대항한 일부 천주교인들의 서구문화에 대한 우월 주의 마저 작용해 천주교는 동서문화의 다양한 교류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활기 있는 발표와 토론을 편 부는 교육사부와 과학사부였다고 교육사부에서 이인호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현재 문교부가 심의하고 있는 교과과정 안에는 고교 자연계에서 세계사과목이 완전히 빠져있으며 인문계에서도 「인문지리」와 「세계사」 중 선택으로 돼있어 결과적으로 어려운 세계사는 없어질 위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72년 이후 정부가 「국적 있는 교육정책」을 내세운 이래 세계사는 점차로 외면 당해 왔다고 밝히고 남의 역사와 지식의 이해 없이는 우리민족의 참다운 의식과 사상도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역사교육이 정치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국가정책결정자들이 서구에 대한 그릇된 지식 때문에 눈을 안으로만 돌리도록 교과내용을 개편함으로써 중·고등학생뿐 아니라 오늘날 대학세대의 사고방식은 지극히 편협해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학사부에서 이부영 교수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나타난 기록을 중심으로 「원시적 질병관의 상징성」을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이 교수는 단군신화 등 환웅이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곡·명·병·형 등 3백60가지의 인간 일을 다스렸다고 함은 환웅이 의신과 역신을 .함께 상징하는 존재였음을 뜻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또 『대성이 월성 서쪽에 뇌성과 함께 떨어진 뒤 한달 안에 큰 질병이 유행했고』(구년춘이월·대성추월성서·성여뇌·삼월경도대역) 『봄·여름에 가뭄이 극심하더니 그해 가을에 왕이 죽었다』(춘하한 추팔월 왕훙무자)는 「사기」 1권 신라본기 기마니사 금조의 기록 등은 천둥·벼락·가뭄·홍수·이상난동 등 자연현상이 역질과 상징적 관련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밖에 「유사」와 「사기」가 전하는 기록에는 병이 천벌로 묘사되거나 역신 또는 역귀의 작태 등으로 표현되기도 했으며 신라 신무왕이 자기가 죽인 신하가 꿈에 쏜 화살을 등에 맞고 등창이 나서 끝내 숨졌다는 기사를 비롯, 우울증으로 번민하다 병이 나 죽었다는 견훤의 기사 등은 현대 심신의학 또는 정신의학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 교수는 밝혔다. <안길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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