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한글서법」만든 서예계 원로|15일 작고한 소전 손재형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5일 작고한 소전 손재형씨는 우리 고유의 한글을 전획필법으로 전개시켜 독특한「한글서법」을 창출해낸 우리 서예계의 원로다.
무리가 없는 자획과 구성, 단아하면서도 문기가 넘치는 소전 서법으로 서예계에서 독보적 존재였던 그가 처음 병석에 눕게된 것은 7년 전인 74년10월29일.
아침에 글씨를 쓰려고 일어나다 갑자기 고혈압을 일으켜 쓰러진 이후 단 한번도 병석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이다.
왼쪽 팔만 거동이 자유로운 반신 불수의 상태에서 손의 움직임과 얼굴 표정으로만 대화를 해온 소전은 그 오랜 투병기간에도 이맛살 하나 찌푸리지 않을 정도로 강인한 인내력을 보여줘 주위 사람들에게 크나큰 감동을 안겨 주기도 했다.
1902년 전남 진도에서 출생한 소전은 어려서부터 조부에게서 서도를 지도 받았다. 그후 성당 김돈희, 석정 안종원, 중국 김석학자 나진옥에게 정식으로 사사, 서예가로서의 역량을 길러 왔다.
양정고보 4년 재학 당시 예서로 쓴『안씨 가훈』이제 3회 선전에서 입선을 차지, 일찍부터 그의 재기를 보여줬다.
54년 초대 예술원 회원이 된 소전은 정치에도 잠시 뜻을 둬 58년에 있었던 제4대 민의원 선거에서 고향인 진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하여 국회 문교 위원장을 지냈으며 72년 제8대 국회의원(공화당·전국구)을 지낸바 있다.
그가 일생을 통해 가장 열성을 기울인 것의 하나가 바로 국전. 1949년 제1회 국전에서 71년 제20회 국전까지 단 한번도 거름이 없이 줄곧 심사를 맡아온 소전은 그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국전을 통해 서예 발전을 기하겠다는 소신은 굽히지 않았었다.
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4년 경성제대 등 총교수가 가지고 간 우리나라 국보급 문화재『세한도』를 되찾기 위해 전화를 무릅쓰고 일본을 방문, 기어이 되찾아온 일도 그의 강직한 일면을 보여 주는 일화중의 하나다.
그러나 그의 성품은 온후하며 풍류를 즐겼다는 것이 주위 사람들의 평. 술·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는 반면 식도락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로 즐겼다. 쇠고기 육회나 갈비는 가장 즐겼던 음식들이다.
병으로 쓰러지기 며칠 전에 쓴『요한 계시록』이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는 글귀가 담긴 이 작품은 기독교와는 전혀 무관했던 소전임을 생각할 때 무척 아이러니컬하다.
술을 들지 않으면서도 주석의 흥을 돋우워 리드해 가던 소전은 그가 남기고 간 한글서예·소전 서풍과 함께 우리 서예사에 깊이 남을 것이다. <홍은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