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경향」이 동인의 목표일순 없다|「작가」동인지를 둘러싼 논쟁을 보고…권헌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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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작가」동인의 첫번째 작품집인『작가』(1980년5월)의 후기에는 응축되어 있는 문학적 신념이 비교적 허심 탄회하게 술회되어 있다. 스스로 <동인>이라는 말을 붙이기조차 쑥스럽게 느낄 정도로 다양한 작품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 하나의 문학집을 자처하고 함께 모일 수 있었다는 것은 당시 문단에 커다란 관심사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더구나 이들이 내걸고 있는 문학적 견해와 주장이「각자의 창조적 능력이 소망스런 쪽으로 확산되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명제로 집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들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지향해 나갈 문학적 목표가 어느 정도의 결속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조차 버릴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작가」동인에 속해 있는 소설가들에게서 구태여 공통점을 지적해야 한다면 주로 형식적 요건에 불과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들 수 있다.
첫째는 이들 자가들이 대부분 70년대의 후반기에 문단에 등장한 신진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의 문학적 출발은, 이념의 충동과 그에 따른 사회적 긴장, 그리고 경제적 혼란에서 오는 사회 계층의 갈등 등 어느 것도 긍정적인 전망을 가지기 어려웠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문학 자체 내에서도 소재 주의의 편향성. 상투적인 정서를 위장하고 있는 통합물의 범람 등이 이들의 젊은 감수성을 자극할 수밖에 없었던 부정적 요인이었음은 물론이다. 「작가」동인들이 내세우고 있는 문학적 다양성의 옹호는 어쩌면 이와 같은 사회적 상황과 문학 풍토에 대한 전반적인 반성의 의미를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학의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이들의 새삼스런 주장이 지금까지도 어떤 팸플릿의 구호보다도 내면적인 울림을 지닐 수 있고, 어떤 특정한 악폐에 대한 격렬한 반론보다도 깊이 있는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그 주장 내용의 타당성보다도 이들 작가들의 진지한 태도에 관련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실속 있는 명분과 그 명분에 임하는 작가들의 진지성이 이들의 모임을 더욱 굳게 다질 수 있는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둘째로 이들「작가」동인은 이른바 <한글세대>라는 말로 지칭될 수 있는 세대적인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삶의 공간은 해방 이후의 분단의 역사가 그 전부를 이룬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삶의 요건에 우선적으로 전제될 수밖에 없고, 민족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이 전혀 불가능한 상태에서 문학하는 행위가 자기 만족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들은 자신들의 삶의 과정 속에서 익혀 왔고,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의식의 자유로움을 위해 문학의 길을 택한다.
소설이라는 것에 대한 창조적 열의가 생생한 인간 관계의 다양성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한 전체적인 인식을 위해 바쳐질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인간관계 자체가 위태로운 상태에서 이들이 선택한 것이 소설이었다는 사실은 깊이 음미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이들 작가들에게서 발견되는 언어적 감수성의 예리함과 현실에 대한 조망의 태도의 진지함이「한글세대」만이 지닐 수 있는 어떤 의식의 충동과 관련될 수 있으리라는 것은 평자만의 독단은 아니라 생각된다.
최근 이들「작가」동인들이 내놓은 두번째의 작품집인『작품』(l981년6월)은 어떤 측면에서는 이미 간행된 첫 번째의 동인지『작가』에서 내걸었던 문학적 신념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활동의 무대를 기존의 문학 잡지의 속성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개척해 나간다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들 작가들에게보다는 오히려 독자층의 반응에 달려 있는 것이며, 작가들은 오직 작품 자체로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이라는 것이 하나의 문학 형식일진대, 이러한 기존의 형식과 개인적 관심을 통합한다는 것은 작가만의 일이며, 그러기에 소설은 흔히 개인이 본 경험의 비전이라고 일컬어진다. 「작가」의 동인들이 주장하고 있는 그대로, 획일화된 사고와 경직된 문화를 풀어헤친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을 끊임없이 자극할 수 있는 삶의 환시를 제공하는 길 밖에 없다. 그럴 때에 소설가는 작품으로서 자기를 내세울 수 있고 책임있는 도덕적 존재로서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두번째의 동인지인『작품』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최근의 논쟁적인 견해들은 오히려「작가」동인이 내걸고 있는 소설적 창조의 열의에 대한 새로운 기대이면서 동시에 자기 확인의 목소리로 치부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자기 확인의 과정은 언제나 개인적인 영역에서 시대적인 것으로 확대되기 때문에 자신의 시대에 대해서 성실하게 쓰려고 할 때, 자기 확인은 그 전제적 요건이 된다.
자신의 세대를 말하려 할 때에도 언제나 자아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먼저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기본적인 태도에 속하는 일임을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단국대 교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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