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에도 흥청…홍콩영화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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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홍콩은 여전히 동남아 영화 산업의 거점이자 메카의 구실을 단단히 하고 있다. 세계의 영화 산업은 극심한 불황에 허덕이고 있지만 동남아만은 예외여서 그 영향이 덜한 편. 따라서 동남아의 많은 영화인들이 홍콩에 몰려 새로운 영화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홍콩은 제작 뿐 아니라 동남아 영화를 수입하기 위한 창구 구실을 하고 있어 세계 각국의 영화 수입업자들이 몰려들어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월남·캄보디아·라오스 등 인도지나 3국이 공산화되면서 이쪽 시장을 잃은 홍콩 영화계는 얼마간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영화 산업의 활동엔 별다른 변화가 없다.
홍콩을 비롯해 마닐라·싱가포르·자카르타·대만 등 동남아의 영화 산업이 불황의 영향을 덜 받고 있는 것은 이 지역의 날씨와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홍콩의 한 영화인은 분석하고 있다. 냉방 시설이 잘된 영화관은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좋은 장소 구실을 하며 이 때문에 영화는 여전히 이곳 국민의 중요한 레저의 하나로 사랑을 받고 있다는 풀이다.
동남아의 영화관은 좌석에 따라 요금의 차이가 나는 것도 특징중의 하나다. 영화의 질은 우리나라 영화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수준. 대부분이 무술·모험·드릴러·섹스를 소재로 한 것들인데 기둥 줄거리는 제쳐놓고 폭력과 섹스만을 나열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유의 영화들이 대부분 홍콩을 중심으로 제작되고 있다. 홍콩엔 현재 1백50개의 크고 작은 영화사가 난립하고 있다.
홍콩에서 영화사를 등록하려면 1백50홍콩달러(약2만원)만 내면 된다.
따로 자격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1백50홍콩달러만 내면 삽시간 안에 허가가 나온다.
그래서 이곳엔 간판만 걸어 놓고 실적이 없는 영화사가 수두룩하다. 실종된 최은희씨에게 초청장을 보냈던 시조흠씨의 금정전영 공사도 영화 제작의 능력이나 실적이 하나도 없는 영화사 중의 하나였다.
홍콩 영화계의 명문은 역시 쇼브러더즈사와 골든하비스트사다. 홍콩에서 한해에 제작되는 영화는 평균 1백50여편골. 지난해 홍콩에선 모두 1백37편이 제작됐는데 이 가운데 쇼브러더즈사가 40편, 골든하비스트사가 10편을 제작했고 나머지 87편이 군소업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골든하비스트사의 경우 80년도에 4백70만 달러(약32억9천 만원)의 흑자를 냈으나 세계적인 영화 산업의 불황으로 이 수익은 예년의 70% 수준이라고 이 회사 사장「레이먼드·초」씨는 밝히고 있다.
홍콩의 영화관은 2백개. 이 가운데 30개가 개봉관이다. 그리고 개봉관 중 8개가 쇼브러더즈사의 전속관이다. 현재 홍콩 당국의 검열을 거친 외국 영화는 6백여편.
이 가운데 국산 영화도 7편이나 들어 있고 자유 중국 영화가 1백70편이나 된다. 홍콩에서의 영화 상영은 흥행 수익도 문제이려니와 세계로 향한 견본시 구실을 하기 때문에 개봉관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홍콩엔 현재 우리나라 영화인 10여명이 동남아 및 세계의 영화인들과 어깨를 겨루며 활동하고 있다.
63년 홍콩에 간 정창화 감독을 비롯해 감독으로 김효천·강범구·신위균·남석훈씨 등이 있으며 배우로는 주로 액션 스타인 동태수·왕호·김태모·황정리·바비 김·신일용씨 등이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정창화 감독은 72년 쇼브러더즈사에서『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제작, 액션물 붐을 일으켰던 주인공. 지금도 홍콩 영화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때 우리나라 영화는 일본·홍콩 다음으로 동남아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었으나 지금은 훨씬 뒤떨어진 실정이다.
홍콩은 동남아 영화 산업의 중심지이고, 국산 영화도 홍콩에서 대체로 호평을 받고 있어 제작자의 아이디어와 당국의 정책이 배려된다면 훌륭한 수출 상품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것이 홍콩에 있는 한국 영화인들의 한결 같은 견해다. <김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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