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듣는 말이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너, 이 다음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하고 자녀의 희망을 떠보는 부모가 있다고 하자. 만일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인 지위에 비추어 좀 쩨쩨한 대답을 하면 사람 구실을 못하는 양 못 마땅하게 여기고, 반대로 거창한 인물을 꼽으면 안도감을 갖는다.
결국은 높은 자리나 돈 많은 사람 말고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녀들에게까지 막연한 희망을 거는 지도 모른다.
이것은 부모가 풀지 못한 소원을 자식한테 기대려는 일종의 욕심이요, 기대 망상에 사로 잡힌 부모님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뜻으로 생각하면 직업의 귀천의식에서 나오는 타이름이기도 하다.
말단 노무자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하는 일 자체는 모두가 귀한 일이요, 숭고한 직업일진대 꽤 어린 자녀들에게까지 벌써부터 큰 몫을 노리게 하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우리 어른들은 자녀들에게 『성실하게 일할 수 있고 정직하게 살 수 있으면 그것이야말로 귀한 직업이요, 보람있는 일이란다』라고 왜 가르치지 못하는가.
속담에『 굼벵이는 뒹구는 재주가 있다』고 했다. 하물며 뒹구는 놈한테 나는 것을 요구하는 난센스는 없어야 하겠다.
우리는 그 안 나는 것만이 귀하고 뒹구는 것은 천한 것으로 크게 착각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곤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상한 풍조가 있다. 자녀들에 대한 기대는 모두 지도자가 되라는 말뿐이다. 실은 지도자보다는 피 지도자, 즉 협종자의 수가 더 많다.
군대로 치면 대장보다는 졸병이 더 많지 않은가.
전부가 대통령이 되고 대장이 될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막연하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만 하지 말고 주변에서부터 실천 가능한 모델을 찾아주어 실제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어디 그 뿐인가. 어린 자녀한테 처음부터 『너만은 장차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호감을 요구하는 교육 또한 잘못이다.
이 세상에 행복을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끝까지 행복만을 누리면서 살기란 드문 일이다.
알고 보면 그 바라는 행복도 명예도 실은 불행과 고통을 딛고 일어선 결실에서 얻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행복을 갖는 사람은 참 행복을 맛볼 수 없다. 그처럼 인생 전부가 행복과 사람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면 도리어 불행도 인생의 깊은 뜻을 담고 있다.
문제는 처음부터 달콤한 행복만을 심어주는 기대감보다는 행복과 불행을 이해하고 두가지 인생을 다 살아갈 줄 아는 교육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어려운 처지에서도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를 배우게 된다.
예컨대 법관이 되라고 하기 전에 법관이 하는 숭고한 일을 가르쳐야하고, 교육자가 되라고 하기 이전에 교육자의 남다른 고통과 보람을 가르쳐야 한다. 정철희 (중앙 청소년 회관상담 연구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