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는 자녀에 무리한 대성 기대는 잘못|성실·정직의 귀중 가르쳐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흔히 듣는 말이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너, 이 다음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하고 자녀의 희망을 떠보는 부모가 있다고 하자. 만일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인 지위에 비추어 좀 쩨쩨한 대답을 하면 사람 구실을 못하는 양 못 마땅하게 여기고, 반대로 거창한 인물을 꼽으면 안도감을 갖는다.
결국은 높은 자리나 돈 많은 사람 말고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녀들에게까지 막연한 희망을 거는 지도 모른다.
이것은 부모가 풀지 못한 소원을 자식한테 기대려는 일종의 욕심이요, 기대 망상에 사로 잡힌 부모님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뜻으로 생각하면 직업의 귀천의식에서 나오는 타이름이기도 하다.
말단 노무자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하는 일 자체는 모두가 귀한 일이요, 숭고한 직업일진대 꽤 어린 자녀들에게까지 벌써부터 큰 몫을 노리게 하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우리 어른들은 자녀들에게 『성실하게 일할 수 있고 정직하게 살 수 있으면 그것이야말로 귀한 직업이요, 보람있는 일이란다』라고 왜 가르치지 못하는가.
속담에『 굼벵이는 뒹구는 재주가 있다』고 했다. 하물며 뒹구는 놈한테 나는 것을 요구하는 난센스는 없어야 하겠다.
우리는 그 안 나는 것만이 귀하고 뒹구는 것은 천한 것으로 크게 착각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곤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상한 풍조가 있다. 자녀들에 대한 기대는 모두 지도자가 되라는 말뿐이다. 실은 지도자보다는 피 지도자, 즉 협종자의 수가 더 많다.
군대로 치면 대장보다는 졸병이 더 많지 않은가.
전부가 대통령이 되고 대장이 될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막연하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만 하지 말고 주변에서부터 실천 가능한 모델을 찾아주어 실제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어디 그 뿐인가. 어린 자녀한테 처음부터 『너만은 장차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호감을 요구하는 교육 또한 잘못이다.
이 세상에 행복을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끝까지 행복만을 누리면서 살기란 드문 일이다.
알고 보면 그 바라는 행복도 명예도 실은 불행과 고통을 딛고 일어선 결실에서 얻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행복을 갖는 사람은 참 행복을 맛볼 수 없다. 그처럼 인생 전부가 행복과 사람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면 도리어 불행도 인생의 깊은 뜻을 담고 있다.
문제는 처음부터 달콤한 행복만을 심어주는 기대감보다는 행복과 불행을 이해하고 두가지 인생을 다 살아갈 줄 아는 교육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어려운 처지에서도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를 배우게 된다.
예컨대 법관이 되라고 하기 전에 법관이 하는 숭고한 일을 가르쳐야하고, 교육자가 되라고 하기 이전에 교육자의 남다른 고통과 보람을 가르쳐야 한다. 정철희 (중앙 청소년 회관상담 연구 실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