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력권과 분배방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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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나와바리(세력권)-. 모든 범죄조직이 그렇듯 검은손의 세계에도 시장이 있다. 조직이 물샐틈없이 강하면 시장엔 잡상인이 기웃거리지 않는다.
그러나 힘이 빠지면 칼부림이 일고 황금시장을 잃기 마련.
때문에 시장을 지키기 위해 대부는 조직을 끊임없이 점검해야하고 몫을 더 많이 주면서 일꾼들을 이끌어가야 한다.
시장을 잃으면 일거리가 줄고 바람 빠진 자동차 바퀴처럼 조직이 굴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소매치기의 대명사인 백식구파가 깨지기 전에는 철저한 구역제가 통했다고 서울역을 중심으로 남대문·명동· 퇴계로 등의 시내버스와 택시정류장은 황금시장.
동대문시장과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도 이에 버금하는 검은 손의 활동무대.
서울근교 안양·송추 등 유원지도 소매치기들이 노리는 시장이다.
검은손의 시장 지키기는 철저하다. 5∼6명의 일꾼들이 작전을 펴다가도 자기들 구역을 벗어날 때는 소매치기 대상을 다른 조직에 팔아 넘긴다.
호남선의 경우 목포에서 이리나 대전이 한 구역이고 대전에서 서울까지가 또 한 구역. 목포에서 점 찍어놓은 물주를 대전까지 가는 사이 털지 못하면 대전에서 다른 조직한테 팔아 넘긴다.
『틀림없이 짐을 가지고있다』는 정보만을 사고 파는 것이다.
수년 전 경찰에 검거된 5인조 소매치기단 동일파. 이발용 면도칼을 휘두르는 이들은 77년부터 백식구파 이후 주인이 없던 서울역을 중심으로 남대문일대 황금시장을 석권, 작두파의 악명을 날렸다.
이들은 시장을 기웃거리는 다른 조직원이나 뜨내기에게는 작두로 손가락을 자르는 잔인한 린치룰 가했으며 이들을 잡으려는 경찰관에게 서슴없이 흉기를 휘둘렀다.
치기배들의 수익분배 방식은 일정한 룰은 없으나 뒤를 봐주는 대부(두목)가 없을 경우
철저히 기계(직접 금품을 훔치는 일꾼)우선주의.
예를 들어 기계1명에 바람잡이가 2명인 일당이 하루 10만원을 벌었을 경우 기계가 3만원,바람잡이가 각각 2만원씩 나눠 갖고 나머지 3만원은 공금으로 적립한다. 개중에는 수익금의 50%까지 공금으로 떼는 소매치기파가 있을 정도로 공금은 필수항목.
일당 중 누군가 죽었을 때(잡혀갔을 때) 그 가족들의 생활비를 대고 변호사 비용도 공금으로 충당한다. 대부가 있을 경우는 그가 비록 현장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지만 그에게도 공금의 몫이 돌아간다. 「죽을 경우」 그는 시구를 구해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기 때문. 대부가 치부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들은 하룻 밤 술값에 1백만원을 뿌릴 만큼 물 쓰듯 돈을 쓰고도 남아 재산을 모으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검찰에 구속된 영문파 두목 유영문(37)도 그렇게 아파트 3채, 과수원 2개,폴크스바겐 자가용에 첩을 2명씩이나 거느렸고 재만파 두목 유재만(52)도 수억짜리 빌딩을 갖고 있었다.
지난1월 검찰에 붙잡힌 5자매파 소매치기단의 대모 임봉선(수배 중)도 남편에게 뒷돈을 대 남편을 선박회사 이사로 출세시킬 만큼 알부자였다.
그러나 이에 비해 그 밑에 있는 일꾼들은 판이하게 다른 생활을 한다. 돈이 생기면 술집으로가 돈을 마구 뿌리고 자가용을 빌어 유원지를 돌며 순간의 환락을 만끽하지만 그 돈도 금방 바닥이나 대부분의 일꾼들은 셋방살이를 한다.
그나마 경찰이 뒤쫓는 듯 하면 또 거처를 옮겨야하는 「안정되지 않은」생활이어서 한 때나마 펑펑 쓰는 돈에 끌려 동거하던 술집여인들도 자녀가 없을 경우는 곧잘 후조처럼 떠나가곤 한다.
결국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이 받는」공식이 소매치기 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오홍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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