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성장하는 교포사회…예술창조에도 한몫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세계예술의 수도」라고 불리는 뉴욕 다운타운의 소호(Soho)지역 일대에 한국인 미술가들의 아틀리에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뉴욕 지방만 해도 미술대학 출신자가 l백50여명이고 그중 20명 안팎은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있다.
이 같은 현상은 재미 한인사회가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큰 발전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직은 작품만으로 생활할 수 있는 예술가가 그리 많지 않지만, 어려운 여건에서도 점진하는 자세는 주목 받을만 하다.

<젊은 부부 미술가도>
예술의 산실 소호에서 작품활동을 하고있는 미술가들은 현재 8명.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백남준씨(49)와 근래 미 화단에서 각광받고 있는 메조틴트 판화가 황규백씨(49) 같은 대가급들은 이미 70년대 중반부터 각기 1백평이 넘는 대형 아틀리에를 갖고 있다.
최근 수년새에는 부부화가 김차섭(41)·김명희(30)씨, 개념화가 임충섭(39)·김웅(서양화) 황인기(30)·이일(29)씨 등이 소호의 화실에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젊은 부부화가 한규남(36)·최분자(29)씨는 근교에 화랑과 도자기제작 가마를 가지고있다. 이밖에도 다른 지역에서 화실을 가지고 있는 많은 재미 한국화가들이 소호 진출을 넘보고있다.

<뉴욕의 소호에 몰려>
60년대 중반부터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현대미술이 시도돼 왔던 소호일대는 70년대에 들어와서 예술가의 집합지가 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이미 한물간 창고의 넓은 공간을 싼값으로 임대해 화실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싯가 30만달러를 웃도는 1백여평짜리 공간을 60년대에는 월l백달러 정도로 세낼 수 있었다.
소호의 상주인구는 8천여명. 어린이 2천5백여명을 뺀 5천여명이 화가·조각가·무용가·배우·음악가·영화제작가·비디오예술가·작가 등 이른바 예술로 밥을 먹는 사람들이다.
화랑이 85개소나 밀집해있는 소호에는 겉보기엔 낡아빠진 창고지대에 불과하지만 이웃 워싱턴 광장 일대의 그리니치 빌리지와 함께 마치 「1920년대의 파리」에 비견되는 예술인의 보금자리다.
파리를 예술의 본적지라고 안다면 뉴욕은 그 현주소, 새로운 중심지랄 수 있다. 특히 예술시장이 경제력을 따라 이동한다는 점에선 전통적인 유럽의 예술시장은 이미 새로운 집산지 미국으로 옮겨 앉았다.

<수준도 인정받은 편>
안타까운 것은 미국으로 건너온 많은 한국의 예술가 가운데 상당수가 생계에 쫓겨 도중하차한다는 점이다.
그나마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있는 화가는 배영철(프라트 연구원의 조각과장), 한용진(조각), 문미애(서양화), 이선자(조각), 김원숙(서양화), 민병옥(서양화), 표경숙(조각), 최일단(동양화), 장성백(동양화), 윤영자(서양화), 김테레사(서양화), 김봉태(판화)씨 등.
명성이 높은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이 6월28일부터 여는 한국화가 초대전에 재미화가 17명이 초대된 것은 그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말해준다.

<노력 안하면 도태돼>
예술가가 끊임없이 자기세계를 개발하고, 작품을 만들지 않고서는 발붙이지 못하는 곳이 모든 부문의 템포가 빠른 미국이다.
『추녀 밑에서 예술을 느끼고, 말과 기수의 일치된 동작에서 기쁨을 느낀다』는 「개념」 화가 임충섭씨는 최근 소호에서 가장 유명한 화랑중의 하나인 오케이해리스 화랑에서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가졌다.
재미화가의 정열과 의지는 결국 미국 속의 한국 촌을 더욱 윤택하게 해줄 것이 분명하다.
사진 장홍근 기자 글 김재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