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여사|훈장받은 전몰미앙인회부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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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신없이 살다보니 외롭다거나 어렵다는 생각을 가질 겨를이 없었나봐요.』
대한전몰군경미망인회의창설(63년)멤버로 현재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경희여사(59·서울여의도동삼부아파트 10동302호)가 모범원호대상자로 2일 국민훈장 석류상을 받았다.
김여사는 6·25동란 미망인으르 그동안 온갖 어려움을 극복, 당시 7살이던 외아들을 훌륭히 키워냈으며, 불우청소년에 대한 직업알선·동료미망인에 대한 생계대책마련·일선장병위문·이웃돕기등의 공적이 높이 평가돼 상을 받은 것이다.
남편 강주명씨(당시31세·육군중위)는 6·25가 터지던해 가을 6사단7연대소속으로 평양전투에 참가했다가 전사했다.
『소식이 끊겨 대구의 육군본부에 찾아가서 전사소식을 들었어요. 순간 얼마나 놀랐던지 받아든 전사통지서나 위문금품(쌀1가마·위로금)을 어디다 떨어뜨렸는지도 모르고 며칠을 계속 울었지요』
김여사의 고향은 함경북도청진. 청진고녀를 나와 중매결혼한지 8년만이었다.
양가의 부모·가족은 모두 이북에 있는터라 당시 7살이던 아들이 아는 사람의 전부였단다.
『수복후 서울중부경찰서옆 빌당 한구석에 손바닥만한 매점을 내고 돈을 벌기 시작했어요. 빌딩사무실 한쪽을 막아 야전침대를 놓고 아들과 생활하며 이를 악물기 한두번이 아니었읍니다.』
어릴때 배워둔 미용기술과 수예등이 큰 도움이 됐고 5·16후 재일동포부인회의 초청으로 일본에서 수예·공예품 판매전시회를 갖게된후부터 생활기반이 잡혀갔다. 아들도 대학(연세대행정학과)을 졸업해 사업가로 1남1녀를 두고있다.
『악착같다고 제 별명이「또순이」지요. 본시 무른 마음을 다그치느라 혼자 눈물도 많이 흘렸어요』
한복차림에 곱게 늙은 얼굴이「또순이」라기보다는 인자한 할머니다. 다만 눈가의 깊은 주름살이 험난하고 어려웠던 과거를 느끼게한다.
『손자(5살)를 봤을 때가 가강 기뻤지요. 아직 건강하니 수원원호원 아동보육소와 일선강병위문을 매년 거르지 않고 다녔으면 해요. 2천8백여 미망인회원중 불우한 사람에게 집단주택을 마련해주는게 제 남은 소원입니다.』
김여사는 별로 한일도 없이 훈장을 받아 죄송하다고 되풀이 하면서 동료미망인들을 사회가 천대하지않고 물질에 앞서 따뜻한 마음으로 보살펴주기를 당부했다.<권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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