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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구삼절(9.3절)

중앙일보

입력

통신과 교통이 발달된 오늘 날에는 외국의 대사관 또는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는 외교관의 역할이 한정되어 있다. 중요한 교섭은 본부에서 출장 등으로 직접 할 경우가 많다. 정상회담이 정례화 되어 정상끼리 만나 매듭을 짓기도 하고 유엔 등 다자 기구가 많아 정상 또는 외상이 따로 만나는 기회도 수없이 많다.

해외거주가 보편화되고 해외여행이 일상화 된 지금은 사건 사고 처리 등 교민보호업무가 현지 외교관의 중요한 업무의 하나가되고 있다. 필자가 주로 근무한 중국이나 일본에 거주하는 교민은 양국이 수교이후 자유 왕래로 거주하는 한국인도 많지만 두 나라 역사의 특이한 굴레에서 본의 아니게 거주하게 된 동포들도 많다.

2015년 조국 해방 70년을 앞두고 이 두 나라에 장기 거주해 온 동포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 민족에서 가장 오랜 이주 역사를 가진 해외동포가 재중(在中)동포가 아닌가 생각된다. 조선조 말기 중국과 가까운 함경도 지방의 일부 주민들이 산악지대인 고향보다 두만강을 건너 평야가 있는 옌벤(延邊)지역으로 월경(越境)하여 농사를 짓고 살았다. 당시 백두산 주변은 청(淸)을 건국한 만주족의 발상지로 일반인의 접근이 불허된 일종의 성소(聖所 sanctuary)였다.

그 후 일제(日帝)가 한반도를 강점함으로써 많은 애국지사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또는 일제의 착취를 견디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지린(吉林)성 등 중국의 동북 3성으로 가족과 함께 빠져 나갔다. 그들은 춥고 건조한 현지의 자연환경을 극복하여 아열대 원산의 벼농사를 만들어 내는 농업혁명을 성공시켰다. 또한 일제 강점하의 조국의 독립을 위한 항일 활동도 계속하였다. 안중근의사와 윤봉길의사의 영웅적 활약이 모두 중국 땅에서 이루어졌다.

1952년 9월3일 중국정부는 벼농사에 대한 기여와 항일투쟁의 공헌을 인정하여 재중동포에게 “조선족(朝鮮族)”이라는 소수민족의 지위와 함께 자치주(옌벤조선족자치주)를 설치하였다. 자치주의 공식 언어는 우리말이기에 재중동포들은 우리말에 유창하다. 그러나 국적은 대부분 중국 국적이다. 금년 9월3일은 자치주 성립 62주년을 맞는 이른 바 “구삼절” 기념일이다.

한편 “재일(在日 자이니치)”로 불리는 재일동포는 일제 강점시대에 일본에 노역 등으로 끌려 간 사람들이 많다. 한 때 200만 이상이 일본에 거주하였지만 해방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귀국하였다. 그러나 생활 터전이 남아 일본에 잔류한 분들도 많다. 그들 대부분은 일제에 대한 거부감으로 귀화를 거부하고 한국적으로 남아 있다.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적어 현지 태생의 자녀들의 한국말이 비교적 약하다.

중국 국적의 재중동포는 외국인으로 간주되지만 일본에서 태어난 2-3세의 재일교포는 대부분 한국적이므로 재외국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한 때 공항의 출입국관리 직원은 입국 창구에서 어려움이 많다고 들었다. 재중동포를 만나면 한국어가 유창하여 우리 국민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외국인(중국인)이고 한국어가 잘 안되어 일본사람으로 생각한 재일교포는 한국여권을 불쑥 내밀어 당황할 때가 있다고 한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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