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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삶의 꿈을 키우는 수인학생들…서울 영등포교도소 교육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5평 남짓의 마루방. 20대의 빡빡머리 학생들이 어울리지 않게 구구단을 왼다.
푸른 수의가 바로 교복이고 왼쪽가슴에 붙은 수감번호가 주소·성명을 대신한다. 학생도 죄수고 선생도 죄수다. 엄격히 말해 낮에는 징역살이하는 죄수고 밤에만 학생·선생이 된다.
취침시간이 지나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모두 부처님처럼 정좌한 채 공부에 열중하는데 학교 교실과 달리 학생들의 재잘거림이나 웃음이 없는 게 특징이다.
서울 영등포교도소 (소장 배응린·54)의 교육사동(교육사동)의 16개방.
방마다 서가에 가지런히 꽂힌 낡은 책과 조그만 질판, 벽에 붙은 시간표 등이 여느 학교 교실 모습이다.
교육사동은 79년6월 새로 부임한 배 소장의 아이디어에 따라 지원자를 모집, 1개방 20명으로 시작됐다. 지금은 지원자가 늘어 16개방에 1백40명이 초등·중등·고등 반으로 나눠 시간표를 짜놓고 매일 하오 6시부터 4시간씩 공부한다. 선생은 재소자중 죄질이 흉악하지 않고 학력이 높은 사람을 교도소 측이 선발하고 교재와 참고서는 일체 무료제공이다. 성인교도소로서는 전국 최초이자 유일의 시도다. 설치 후 1년 반 동안 58명이 각급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2명의 대학생도 배출했다. 대학생이 된 2명은 가석방되어 현재 재학 중. 16일 발표된 고입자격검정시험에도 30명이 응시, 9명이 합격했고 8월 시험에는 50여명이 응시할 계획이다.
고등반의 조봉동 씨(24·부산)는 대입자격시험에 대비해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국민학교 3년 중퇴의 학력이었지만 이곳에 들어온 후 한달 만에 중입자격시험에 평균 96점으로 수석 합격했고 지난해 4월에는 고입자격시험에도 합격했다.
제본공인 그는 낮에는 교도소 내 제본공장에서 노역을 해야한다.
아침 7시 출역 때 신주머니크기의 책 보따리에 책을 넣고 나가 틈틈이 휴식시간에도 책을 보곤 한다.
배 소장은 여건이 허락하면 이들에게 방송통신대학 강의를 듣도록 앰프시설을 해줄 방침이다.
「우리는 한권의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입모아 외치고 이들이 출역한 후 한 중등반 칠판에는 서투른 글씨로「인일시지념이면 면백일지우니라」하는 경구가 씌어있었다. <권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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