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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끝> 떠날 때는 말 없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김상득 듀오 기획부장

안녕. 6년 가량 이곳에 글을 썼지만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하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2009년 2월 5일 오후가 생각나네요. 평소와 다름없던 그날 오후가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5시쯤 휴대전화로 걸려온 전화 한 통 때문입니다. 중앙SUNDAY S매거진에 짧은 글을 한번 써보지 않겠느냐는. 코너가 실릴 위치가 맨 끝이라 원래는 해외 유머 같은 걸 실을까 했는데 전에 본 김 부장 글이 웃겼던 게 생각나서 연락한다는.

정형모 에디터의 제안을 받고 그날 저녁을 어떻게 먹었는지 잠은 제대로 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다음날 원고를 보냈습니다. 2월 8일자에 실릴 첫 칼럼 원고를 말이죠.

글은 꾸준히 많이 쓰면 는다고 말하잖아요. 저는 2009년부터 만 5년 7개월 동안 거의 매주 한 편씩 대략 270편의 글을 썼지만 보시는 것처럼 조금도 늘지 않았습니다. 정상까지 밀고 올라간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매번 산을 내려가는 시시포스처럼 한 편을 쓰고 나면 항상 원점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조금 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처음엔 글자 수 900자로 출발했는데 지금은 1600자를 쓰고 있으니까요.

칼럼을 쓰는 내내 막막했습니다. 제가 생각해낸 소재는 글로 옮기기엔 너무나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것을 글로 써도 괜찮을까, 뭔가 메시지를 담아야 하지 않을까, 지면이 아깝지 않을까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비관하고 낙담하면서 시간만 보내다 마감에 쫓겨 가위 눌린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러다 결국엔 펑크를 내고 말겠다 싶은 절망감에 이 시공간에서 사라지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동안 참 힘들었겠구나 생각하시겠지만, 그 생각이 틀린 건 아니지만 즐거움도 많았습니다. 사실 기쁨이 더 컸어요. 수많은 독자들이 매주 일요일 아침 제 칼럼을 읽는다는 생각은 생각만으로도 기쁜 일이죠. 분에 넘치게 격려도 많이 받았습니다. 한번은 어떤 여성이 팬이라며 사인을 청한 적도 있었어요. 정말 한번이었지만.

언젠가 이곳에 ‘마지막 인사’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어요. 그 글의 일부는 이렇습니다.

“내 메일함에는 ‘마지막 인사’라는 폴더가 있다. 퇴사하는 동료들이 마지막으로 보내온 메일을 모아둔 것이다. 내가 그 메일들을 따로 보관하는 이유는 가끔 메일함을 정리할 때 그 메일들이 다른 메일과 함께 삭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 메일들은 ‘마지막 인사’니까.

나는 체조경기, 가령 뜀틀경기에서 도약한 선수가 멋지게 공중회전을 한 다음 약간 불안정하게 착지했을 때, 그 때 자세를 가다듬어 양다리를 모으고 양팔을 펼쳐서 취하는 마무리 포즈를 좋아한다. 그 포즈에는 ‘착지가 다소 불안했지만 여전히 멋진 선수라는 사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선수의 마음이 담긴 것 같아서다.”

지금 제 마음 역시 그렇습니다. 제가 쓴 글에는 수준 미달인 글도 있었고, 새로움도, 재미도, 메시지도, 감동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지 못한 글도 많았겠지만 여전히 일요일 오전의 다정한 웃음을 준 칼럼으로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마음만이 아니라 정말 체조선수의 마무리 포즈를 하고 있어요.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중앙SUNDAY 독자들과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안녕, 이라는 인사는 헤어질 때도 만날 때도 하는 참 재미있는 인사 같습니다. 안녕.

김상득



김상득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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