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운동권 정당에서 국민의 정당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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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세월호 참극 이후 한국 사회는 ‘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로 나뉠 것이란 말이 나왔다. 그로부터 넉 달 반이 지난 지금 세월호 이후의 한국 사회는 이전의 사회보다 더 후퇴한 느낌을 준다. 나라의 기획집단이자 사령탑인 정치권이 어떤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 채 또 다른 갈등과 투쟁 속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책임은 합의 파기, 지도부 흔들기, 협박적인 강경론, 감상적 선동, 당파 이기주의, 장외 투쟁 같은 반의회주의적 행태를 일삼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민심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당 지지율은 새누리당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유족들이 오히려 새정치연합에 ‘국회로 들어가라’고 지침을 주는 판이니 130석 거대 야당의 몰골이 얼마나 초라한가. 그나마 15명의 소속 의원이 ‘국회를 지켜야 한다’는 의회주의적 용기를 보여준 건 다행이다.

 새정치연합의 반의회주의적 고질병은 1970~80년대 체질화됐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투쟁 문화에서 비롯됐다. 운동권 문화는 30여 년이 흘러 민주화가 달성된 뒤에도 진보진영을 지배하고 있다. 세상을 민주·진보의 선한 세력과 반민주·보수의 악한 세력의 투쟁이라는 선악논리·증오논리·진영논리로 바라보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비극은 운동권 논리가 이른바 친노·486·시민운동 출신 강경파들에게 스며 있고, 이들이 당의 주류세력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들은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선명성과 투쟁성을 더 강조하고 있다. 그들의 관심이 정권 교체보다 당권 장악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새정치연합이 걸핏하면 투쟁을 외치는 독선적인 운동권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복잡다원화된 민주 사회의 후진 집단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런 후진적 집단으로 떨어진다면 ‘세월호 이후’의 나라 건설에 장애가 되는 건 물론 2016년 총선이나 2017년 대선도 기약하기 어려울 수 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호남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중도개혁·지역연합으로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고, 노무현 대통령도 정몽준 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중간·중산층을 안심시키면서 집권이 가능했다. 미국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나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역시 이념과 계급, 선명성에 집착했던 당 주류 세력과 맞서면서 제3의 노선, 경제민생 노선을 확립함으로써 집권의 기반을 쌓았다.

 새정치연합 ‘15인의 의회주의자’는 다음 주 당의 진로를 놓고 강경파들과 치열한 난상토론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그동안 의회파들은 주류·강경파의 눈치를 보느라 의원총회에서 제대로 발언하기조차 힘든 형편이었다. 이제 그들의 용기가 운동권 체질의 정파적 정당에서 다원화 사회를 이끌어갈 국민적 정당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세상이 변하면 야당도 변해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