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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정부서 지정한 유일한 「한와요」 고령토로 굽는 한국기와 고령군 개진면 구곡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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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골짜기가 하도 깊어 아홉 골이 된 경북 고령군 개진면 구곡동. 문화재관리국이 지정한 유일한 한와요가 있는 한국기와를 굽는 마을이다.
이 마을의 옛 이름은 「왜나루」(와진) 또는 「기왓골」(와촌). 그 이름부터가 고령기와의 명성과 깊은 유래를 간직하고있다
고령기와의 역사는 법보대찰인 합천 해인사와 함께 한다. 신라 애장왕 3년(802년) 가야산에 대가람을 이룩했을 때 얹은 기와가 바로 이곳 구곡동의 기와였고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각의 기와도 이 마을에서 구워다 얹었다.
연년세세 기와 굽기 1천년-.
강화도에서 만든 대장경 목판을 배에 실어 서·남해 바다를 돌아 낙동강하구에서 강을 거슬려 오르다 멎은 곳이 면사무소가 있는 개포.
당시 개포에 내린 목판은 해인사스님들이 머리에 이고 가야산 1백릿길을 걸어 날랐고 스님들은 경판을 나르기 전에 이 마을의 기와를 저 날랐다.
구곡동 고령기와의 동의어가 고령토. 물에 갠 진흙이 말리는 동안 갈라지거나 트지 않고 낮은 온도에서도 쇳소리가 나게 단단한 기와로 익는 것은 이 고장에서만 나는 고령토 덕분이다.
『장골」다섯 사람이 한꺼번에 올라 서보이소, 깨지는가.』
30년 전 남한제일의 기와장 노만주씨(작고)에게서 기술을 익힌 뒤 평생을 구곡동 기와 가마에 살고있는 김영하씨(60)는 실꾸리 풀듯 기와자랑을 펴놓는다.
그가 말하는 구곡동 기와는 야문 것 말고도 짙은 회색의 은은한 감촉이 바로 조선사람의 심성과 꼭 닮았다는 것이다. 「새까맣고 반짝이며 매끄러운」건 품위 있는 건물에 올려놓으면 집 덩어리 전체가 방정스러워져 못쓰는 법이란다.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와요를 갖고있는 김씨의 공장은 대지 3천7백평에 음거(음거·초판을 말리는 곳)가 3백70평. 6평 짜리 가마 16개가 공정에 따라 나란히 자리잡고있다.
김씨 가마에서 1년에 구워내는 기와는 평균 30만장. 60년대 문화재 보수와 정화작업이 한창일 때는 l년에 50만장도 부족했다.
이 마을에서 내는 기와는 어림잡아 15종류. 암키와·수키와·암막새·수막새·취두(경두)·치미·귀면·착고(저고)·어새·망와·점돌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지붕의 바탕이 되는게 암키와요 이를 덮어 빗물이 스며드는걸 막는게 수키와다. 암·수막새는 처마 끝을 막아주어 기와를 올릴 때 제일먼저 놓인다.
독수리머리라는 취두는 높이 60cm의 대형기와로 용마루 양쪽 끝에서 집의 위엄을 세워주고 같은 용도로 쓰이는 치미는 용을 잡아먹고 산다는 물고기의 꼬리형태 기와.
나한의 얼굴 등을 새긴 귀면은 처마끝머리에 앉히고 용마루와 처마마루, 암·수키와 사이의 연결엔 어새가 쓰인다.
기와를 만드는데는 「점토 이기기」 「기본형 뜨기」 「말리기」 「굽기」의 4단계.
『옛날엔 장정 여럿이 한꺼번에 짚신을 벗고 들어가 흙을 이겼지요. 이도 모자라면 황소를 몰아넣어 하루종일 찰진 흙탕 속에서 맴을 돌게 했어요』
김씨 밑에서 12년째 일하는 김경렬 화부(32)의 말이다.
하룻밤을 재운 진흙반죽은 한 층의 높이가 1·5cm인 5층 나무틀 속에 다져 넣고 가는 철사 줄을 틀 사이에 넣어 번갯불처럼 갈라치면 기와크기의 흙이 시루떡처럼 썰어 진다.
이룰 다시 쓰임새에 따라 굽히고 휘게 한 뒤 가장자리를 두들겨 마무새를 곱게 하면 초판기와가 된다. 모양을 갖춘 초판은 그늘에서 이틀, 햇볕아래서 사흘씩 음건·양건을 하고 다음엔 가마로 옮긴다.
그러나 요즘은 모든 과정이 기계화되어 옛날 같은 품시앗은 덜든다. 흙을 이기는 것은 38마력 짜리 경유발동기의 분쇄기가 맡고 초판도 대부분 기계가 찍어낸다.
가마 속에 5백∼6백장의 기와가 7층으로 쌓여지고 불질이 시작되면 기와마을의 독특한 금기와 미신이 수행된다.
불질은 처음 3시간 동안은 섭씨6백도로, 다음 9시간은 섭씨9백도로 모두 12시간 계속 된다. 화부의 기술은 9백도의 온도를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에 있다. 그 이하면 기와가 잘 부서지고 1천4백도가 넘으면 녹아 기와모양이 일그러진다.
한 달에 5번 정도 기와를 구워내는 가마는 불질 한번에 벙커C유는 7드럼(35만원) 폐타이어면 2t(5만원) 톱밥이면 50가마(2만원)가 든다. 기와의 장당 가격은 손이 덜 가는 암·수키와가 3백50원. 손질이 필요한 막새기와 귀면은 1천∼2천원 등 각양각색. 대찰 지붕에 6개가 필요하다는 취두·치미는 1개 5만원씩이나 된다.
불질이 끝나면 양쪽 아궁이를 막고 남겨두었던 가마봉우리 위의 구멍도 완전히 봉한 채 사흘을 재운다.
가마 속의 연기는 기와에 색깔을 입히는 물감구실을 한다.
기와의 생명은 모서리가 반듯한 모양에도 있지만 얼룩이지면 파작.
불질에서의 금기는 버드나무. 버드나무를 태우면 가마에서 나오는 기와는 모두가 얼룩이 들기 때문이다.
김씨는 스승 노씨가 한때 땔감 구하기가 어려워 헐어내는 동헌기둥을 졌다가 가마를 통째로 실패한 적이 있다며 동헌기둥 땔감도 절대 금물이다.
『동헌기둥에는 관원들의 횡포에 양민들의 한이 서려 부정이 탔기 때문일 것』이라며 김씨는 껄껄 웃었다.
또 다른 금기는 불질시작 때의 여자. 여자가 곁을 지나가고 나면 기와가 꼭 트집을 잡아 어떤 식이든 변고가 생긴다 는개 일꾼들의 미신이다.
3월초, 한해의 첫 불질 때 올리는 고사가 그토록 정성스러울 수가 없다.
고사에 올리는 돼지는 전국시장을 다 돌아다녀서라도 얼룩무늬 하나 없이 온통 털이 새까만 수 돼지라야만 한다.
몸이 온통 새까만 돼지처럼 기와에도 얼룩이 지지 말아달라는 기원이 여기에 스며있다.
김씨의 기와가마에는 현재 일꾼이 20명. 10년 이상 경력자만10명이나 된다.
이들의 품삯은 「돈내기」로 암·수기와는 한 장에 34원, 막새는 60원꼴. 가마의 화부는 기와 한장에 30원을 받는다. 일꾼들의 한달 평균수입은 15만원. 시골수입 치곤 괜찮은 편이지만 기와가마가 겨울 4개월을 쉬기 때문에 사실상의 수임은10만원선.
구곡동 기와는 현재 남대문을 비롯, 경복궁·해인사·불국사·수덕사·화엄사 그리고 오죽헌·도산서원의 보수 정화 및 신축에 쓰여진다.
그의 화랑의 집, 경주박물관, 보문단지, 워싱턴의 한국대사관, 그리고 주한 미대사관 저 등 이름난 건물에 구곡동기와가 안간 곳이 없을 정도다. <고령=진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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