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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재산 건보료는 시대착오" … 일본 지자체 줄줄이 제도 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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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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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도(都) 고쿠분지 시의 건강보험 민원창구에서 한 시민이 상담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지자체가 지역 건보를 운영한다. 이 시는 2013 ~ 2015년 3년에 걸쳐 재산 건보료를 없앤다. [신성식 기자]

“힘 없는 자의 돈을 뜯는 게 건강보험이냐. 강제로 퇴직당했는데 보험료가 5배나 올랐다.” 건강보험공단 김종대 이사장이 25일 자신의 블로그 ‘건강보험 공부방’에 올린 글의 제목이다. 50대 퇴직자가 공공근로를 그만두면서 건보료가 5배 뛰면서 항의한 내용이다. 세 식구의 가장인 이 퇴직자는 8900만원짜리 아파트와 2003년식 자동차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월 15만5100원의 건보료가 나오자 건보공단 지사 사무실 책상을 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직장가입자의 건보료는 근로소득에만 매기니까 단순하다. 자영업자나 일용직 근로자 같은 지역가입자는 종합소득·재산·자동차를 따져 건보료를 매긴다. 1989년 지역건보 제도를 도입할 때 소득자료가 별로 없어서 간접 잣대로 재산과 자동차, 가구원수 등을 활용했다. 지금은 은퇴한 고령 인구가 늘면서 보유 주택 때문에 보험료가 많이 나와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건복지부는 민관 기획단(단장 이규식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명예교수)을 만들어 개선 방안을 논의해 왔다. 재산(자동차 포함) 건보료 비중은 낮추고, 소득 건보료를 늘리기로 방향을 잡았다. 직장인이나 피부양자의 연금·이자·배당 소득에 건보료를 더 물리는 방안이 유력하다. 기획단은 다음달 4일 회의를 열어 최종안을 만든다.

 우리 건강보험은 일본을, 일본은 독일을 각각 벤치마킹했다. 우리 건보 제도의 뿌리 격인 두 나라는 시대의 변화를 어떻게 따르고 있을까. 2012년 2월 일본 후생노동성·도쿄도청 등을 방문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2011년 말 기준으로 재산 건보료를 매기는 건보조합이 1234개였는데 최근 다시 가보니 2년여 만에 1185개로 49개가 줄었다. 일본은 3484개의 조합이 자치 방식으로 운영한다. 부과방법 이 조합마다 다르다. 자영업자(우리의 지역가입자)는 1742개 조합에 속해 있고 시·정·촌(시·군·구)이 운영한다.

 재산 건보료를 없앤 도쿄 서쪽 외곽의 고다이라(小平)와 고쿠분지(國分寺)시를 찾아갔다. 21일 오전 10시 고다이라시 보건센터 대기실에는 건강상담을 하러 온 주민들로 붐볐다. 갓난아이를 안고 온 젊은 부부부터 노인까지 다양했다. 이 시는 1959년 건보를 시행할 때 소득·재산·가구원수·세대에 보험료를 매겼다. 지난해부터 3년에 걸쳐 부과방식을 바꾸고 있는데, 2016년이 되면 57년 만에 재산·세대 보험료가 사라진다.

 가와지리 다카시 보험연금과 계장은 “당시는 농업인구가 많아 소득을 파악하기 힘들어 재산이나 세대에 보험료를 매길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지금은 농업인구가 줄고 핵가족화·도시화가 진행돼 재산과 세대에 보험료를 매기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가구원수 건보료는 지난 한 해 1인당 1만7500엔(17만1200원)을, 세대 보험료는 가구당 5400엔(5만2800원)을 물린다.

 이날 오후에 방문한 고쿠분지시는 재산 보험료는 51년 만인 2010년, 세대 보험료는 2012년에 각각 폐지했다. 이 시의 복지보건부보험과 직원은 “독신자가 증가해 재산에 건보료를 매기지 않아도 재정에 영향이 크지 않다” 고 말했다. 일본 도쿄도(都) 산하 62개 기초자치단체 중 18개만 재산 건보료가 남아 있다. 도쿄 도심의 23개 구 중에서 재산 건보료를 받는 곳은 없다.

 독일은 재산에 건보료를 매기지 않는다. 질병금고연합회 미하엘 벨라 정책담당은 “근로자는 근로소득에만 건보료를 매기고, 자영업자는 사업·임대소득 등에 매긴다”며 “ 재산 자체에는 건보료를 매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독일에는 자동차 건보료가 아예 없다. 한국은 지역가입자의 재산 건보료 비중이 48%, 자동차가 13%다. 실직하거나 은퇴하면 아파트와 차 때문에 보험료가 올라가는 사람이 48%나 된다. 김종대 이사장은 “시대가 달라진 데에 맞게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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