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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벤처를 '죽음의 계곡' 에서 구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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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남민우
(사)벤처기업협회 회장
㈜다산네트웍스 대표이사

우리경제의 성장동력이자 일자리 보고로서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로 창업한 중소 벤처기업들이 주목 받고 있다. 정부도 창조경제 실현의 핵심 정책으로서 기술기반 창업 활성화와 창업기업에 대한 투자환경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활발한 연구개발(R&D) 지원을 통해 창조경제 생태계의 기반을 마련해 왔는데, 2012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가 연구개발비는 정부(12조2300억원)와 민간(43조2200억원)을 합해 총 55조 5000억원 규모로 세계 6위 수준이다. 또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집약도는 4.36%로 세계 2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12년 기준 우리나라 신생기업의 3년 생존율은 41.2%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으로 나타났다. 창업기업의 생존에 가장 큰 장애물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자금조달과 판로확보의 문제다. 특히 성장 잠재력과 고용창출 효과가 큰 기술창업은 도·소매나 외식업 등과 같이 소액매출을 기반으로 하는 생계형 업종에 비해 안정적인 수익이 창출되기까지 기간이 길고 초기 투입비용도 높아 자금회수 지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혁신제품들이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이유로 국가 R&D 투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창업 초기 기업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급측면의 정책뿐만 아니라 판로지원 및 공공구매와 같은 수요측면의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돼 왔다. 우수 벤처기업이 초기 판로 개척에 실패해 3~5년 사이에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기업 생애 주기별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와 같은 필요성을 공감하고 다양한 정책을 통해 중소기업의 판로를 지원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도 정부가 직접 발주를 통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로서의 역할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기술기반 중소기업의 초기 공급사례 확보를 돕고 관련산업 진입에 마중물 역할을 하는 정부조달 시장은 단순히 좋은 물건을 싸게 사서 예산을 절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신설 기업이 초기 자금난을 극복하고 경쟁력을 높여 국내외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중소기업 육성의 텃밭이자 발판인 것이다. 최근 공공조달시장은 중소기업 제품 구매 비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진한 측면이 많다. 특히 기술중심 제품의 경우 국산 제품의 경쟁력 강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기업이나 외산 제품 의존도가 높다. 미국의 사례와 같이 복수의 중소기업 참여가 가능한 사업에 한해서는 중소기업간 제한 경쟁을 규정하는 등 중소기업에게 최대한의 참여 기회를 줄 수 있도록 하고, 수요처인 공공기관에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우리 정부가 공공 조달시에 기본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정부 조달법상의 최저가 입찰제도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 해야 할 시점이다. 예산 절감을 통한 재정 건전성 확보도 물론 중요하지만 큰 틀에서 정부의 역할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원가 이하의 조달로 중소업체를 도산하게 하고, 절감된 예산을 복지 비용으로 지출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정부 재정 운용 방향일까. 그 동안 중소 벤처기업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최저가 낙찰제로 구매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이들 기업을 육성하고 산업을 활성화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투자를 확대했던 정부정책에 부합했던 것인지 예산 집행 효율성 측면에서도 다시 짚어봐야 한다. 다른 분야는 차치하고라도 중소 벤처기업 육성정책에 반하는 최저가 낙찰제는 반드시 재고해야 한다.

 최근 정부의 정책 방향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정부는 지난 13일 제4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소프트웨어(SW) 산업생태계 복원 방안의 일환으로 SW개발사업의 인건비를 인상하고 최저가 낙찰제 관행을 개선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매우 고무적인 정책 변화다. 다만 최저가 낙찰제는 SW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 만큼 향후 중소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정부 발주 사업에 대해 확대 적용해야 하며, 이를 통해 민간기업으로 확산을 유도해주길 기대한다.

남민우 (사)벤처기업협회 회장 ㈜다산네트웍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