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세계란 소우주를 창조하는 것|소재의 다양성에 비해 정서가 불완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우리에게 오래 기억되는 시조(시), 영원히 전하는 작품이란 인간의 공통적인 관심사를 승화시키고 현상(사물)의 진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개적 체험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체험세계가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함으로써 많은 독자의 공감을 사게된다.
시조는 자신의 체험세계와 인식상황을 정서적 운율적으로 표현하는 시 형식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주에 대한 작품들은 소재의 다양성과 확충된 면모를 보이고 있는 한편 사상의 정서화가 완전하지 못하여 관념적인 면을 보이고있다.
이요섭씨의 『목련꽃』은 어떤 의미적 세계를 천착하지 않고 목련꽃 핀 정경을 통하여 감정적 상황을 내보이고 있는 시조로서 비유도 재미있으며 시조의 형식을 잘 갖추고 있다.
최중태씨의 『실상사』는 관념적인 면이 배제돼 실상사라는 사명을 통한인생과 현상과의 대위적 사유가 보편적 결론에 이르고 있으며 유관형씨의 『화실』은 화실의 좁은 공간 속에 한나절과 한 계절을 포용하면서 한 생명을 탄생시키고 있다.
작품의 세계란 하나의 소우주를 창조하는 것이며 그림을 그리는 일이나 시조를 쓰는 일이란다 같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켜 존재하게 하는 작업일 것이다. 『들길을 걸으며』는 우리는 삶에 쫓겨 자연을 잊고 있지만 우리의 망각 속에서도 자연(고향)은 봄이 오면 어기지 않고 생명을 소생시킨다.
그것이 자연의 질서다. 「이랑을 메고 푸른 알로 태동」하는 2월의 아픔과 기대를 적절한 언어로 잘 표현하고 있다. 계절적 배경을 같이한 시조로 이상아씨의 『초우』는 봄비를 모티브로 하여 사랑의 상념을 노래하고 있으며 맑은 서정과 조용한 체념이 잔잔히 흐르고 있는 시조다. 시조의 형식미에 조금 더 유념했으면 한다.
김윤호씨의 『목로주점』은 주점의 풍속도, 일상적 생활의 정을 노래함이 진솔하게 나타나 있다. 관념적인 언어로는 구체적 사실을 명료하게 건달하지 못한다. 언어의 선택에 노력이 있기를 바란다.
이 외에도 이국혜씨의 『사부가』는 우리가 지나쳐 버리고 있는 부정을, 이정신씨의 『강강수월래』는 민속적 원무를 시조로써 잘 이루어진 작품임을 밝혀둔다. <김제현 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