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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3)제73화 증권시장(4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증금주」파동>
매매쌍방간의 치열한 공방전으로 치솟았던 증금 주가는 1월말께에는 7백원선에 머물렀다.
매수 측인 한양의 자금 동원력에 한계가 다다랐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것이다.
2월에 접어들면서 보도 측의 연합전선은 공격 전을 개시하여 매수 측은 밀리기 시작했다.
2월4일과 5일 이틀간에 l백50원이나 폭락하면서 5백원선으로 되돌아갔다.
주가가 이렇게 폭락하자 증금 주를 산 투자자들이 아우성이었다.
5일에는 고객들이 입회 장까지 몰려와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휴장하기까지 했다.
다음 날에도 입회 장에 몰려든 고객들은 시장대리인에게 달걀세례를 퍼붓는 소동까지 벌여 끝내는 경찰관이 출동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주가는 계속 떨어졌고 증시를 빠져나가는 투자가들이 늘어만 갔다.
매매쌍방은 이연 매매로만 대치했기 때문에 건옥은 풀리지를 않았고 시장은 더욱 침체의 늪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러한 침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이동수 거래소이사장은 정부소유주식의 매각, 기업공개의 적극추진으로 증시 분위기를 호전시켜줄 것을 정부에 건의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했다.
투자공사는 시장조각을 시도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후 증금주는 9월까지 5백∼6백원 선을 오르내리면서 무기력한 장세를 지속했다.
10월에 들어서면서 이변이 생겼다. 그 동안 매수의 주역이던 한양은 매도 측으로, 또 중보 등 매도회사들은 매수세로 돌아섰다.
매수세와 보도세가 뒤바뀐 것이다. 이 일과 관련해서 이 기회에 밝혀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당시나 그후의 기록에 단자가 경영하는 삼보증권이 처음에는 매도 세에서 후에 매수 측으로 돌아섰다고 되어있는데 여기엔 약간의 오해가 있다.
이 당시 삼보증권 자체는 사실상 어느 편도 아니었다.
다만 삼보고객 중에 매도작전을 폈던 나상근씨 같은 큰 고객들이 있어 주로 파는 추문만을 취급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매도 측으로 간주됐던 것 같다.
아무든 입장이 바뀌면서부터 중보 증권은 증금주를 거세게 사들여 갔다.
70년10월초부터 6백 원대에 있던 증금 주가는 서서히 오르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12월 들어서는 마침내 1천 원 선을 뚫고 올라섰다.
이런 판국에 12월 하순쯤 중보의 김당수 사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강 사장도 아는 것처럼 나는 현재 증금주 매수에 나서고 있소. 매수에 실패한 한양은 이미 보유 주를 대부분 보도했고 오히려 실물도 없이 상당량을 계속 팔 터이니 우리 한번 힘을 합쳐보지 앓겠소』
필자는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삼보의 큰 고객 중의 한 사람인 나씨는 증금주를 많이 팔아놓고 있었다.
이중에는 실물이 없는 공보도분도 상당량 됐다.
매수 측으로 돌아선 중보가 사들이면서 주가가 계속 상승하는 바람에 이때 나씨는 상당한 차금 부담을 안고 있었다.
고객인 나씨를 보호해야할 입장이었던 필자는 김 사장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나씨를 좀 설득시켜 주시오. 우리가 매수 측으로 연합전선을 편다면 기필코 승산이 있을 것이오.』
나는 나씨를 만나 아무래도 매도는 불리하니 차제에 매수 측으로 전환할 것을 강력히 권유했다.
『좋소. 강사장의 판단이 그렇다면 그대로 따르겠소. 그러나 조건이 하나 있소. 나 혼자만으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으니 강사장도 함께 개인자격으로 참여해 주셔야 겠소』
나씨의 이 말에 필자는 많은 번민을 했다. 참으로 어려운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됐다. 결국 해가 바뀐 71년1월2일 우이동 모 호텔에서 나씨와 만나 합의를 봤다. 김사장은 소식을 전해듣고 반가워했다.
『그러나 우리의 힘만으로는 안전하다고는 볼 수 없으니 적당한 인물 한사람만 더 규합하는 것이 어떻겠소]
필자는 말을 하며 머리 속에서 동양증권을 지목했다.
당시의 동양증권은 사주이며 회장인 윤병단씨(현 일성신약회장)와 사장 김종수씨(현 상장협의회 상근 부회장)팀으로 짜여져 있어 어느 정도 「힘」이 있는 회사였다. 물론 중보의 김 사장도 대찬성이었다.
필자는 윤씨를 만나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증권금융회사란 우리 나라에 증권시장이 있는 한 절대 필요한 회사고 전망 또한 좋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들이기 시작하면 주가는 반드시 오를 것이고 많은 차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라도 상당량을 오랫동안 가지고 기다린다면 손해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윤씨는 이 제의를 쾌히 승낙했다. 이렇게 해서 사자연합전선(중보 증권의 김 사장, 동양증권의 윤 회장, 삼보의 대 고객인 나씨, 그리고 필자)이 형성되게 된 것이다.
이 연합전선의 형성을 위해 계약서까지 만들어졌다.
이 내용을 두고 항간에는 구구한 억측이 나돌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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