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야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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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9세기초 미국소년들이 야구를 하는 광경은 상상만해도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것은 야구가 아니라 숨바꼭질 같았다.
투수(볼러)가 볼을 던지면 타자(스트라이커)가 받아치고 베이스로 달려가는 것은 지금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투수는 볼을 재빨리 잡아 역시 베이스로 달려가야 한다. 먼저 도착하는 쪽이 이긴다. 타자가 앞서면 세이프고, 투수가 앞서면 타자는 아웃.
베이스는 막대기 아니면 구덩이. 선수의 삭도 4명에서 10여명까지 제각각이었다. 막대기나 구덩이의 베이스가 위험해 한때는 돌덩이로 바뀐적도 있었다. 모래주머니가 등장한 것은 1841년의 일.
야구의 기원은 제설이 분분하다. 미국스포츠상의 명문「A·G·스플등」은 「내셔딜·리그」 회장「G·밀즈」를 위원장으로 하는 「야구기원조사단」을 만들어 정설을 발표한 일이 있었다. 결론은 1839년미국 「뉴욕」주의 「쿠퍼즈타운」에서 「애브너·더불디」소장이 안출, 여기서 최초의 베이스볼 게임이 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 뒤 「뉴욕」강서관의 「R·W·엔디슨」이라는 사람은 이논을 제기했다. 1750년이전부터 영국에 「배트」「볼」「베이스볼」이라고 불리는 소년들의 즐거운 경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워싱턴」의회도서관에 보관된 1787년간 어린이 그림책 속엔『베이스볼』이라는 시가 그림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야구의 유래는 이젠 몇세기를 거슬러 13세기에 비릇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영국의 「크리키트」「라운더즈」, 또는 「피더」가 바로 야구의 선조라는 것이다.
오늘과 같은 야구는 1845년 「뉴욕」에서 「니커보커」 베이스볼협회가 생기면서 비로소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다이어먼드형의 필드를 고안한 사람은 그 회원이었던 「알랙산더·카트라이트」. 이때만해도 21점을 선취하는 팀이 승자였다.
우리나라에 이런 야구를 전해 준 사람은 l905년 미국인 선교사 「길레트」였다.
최초의 경기는 그 이듬해인 1906년 2월17일 황성기독청년회팀과 독일어학교팀과의 시합.
이 무렵 서울의 한성학교·휘문의숙·경신학교, 평양의 숭보전문, 관천의 대성중학등에 야구부가 창설되어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아직 YMCA 야구팀을 당할 팀은 없었다.
1922년12월엔 미국「메이저·리그」 선발팀을 초청, 전조선팀과 겨룬 일도 있었다.
일본인들은 한때 무슨 심은인지 한국인은 야구를 못할 것이라고 했었다. 어이없는 소리다.
요즘 고교야구장에서 생명의 비상, 젊음의 작렬을 보면 격세지감을 누를 수 없다.
이제 신연의 향당속에 중앙일보사주최 대통령배경기를 필두로 고교야구 시즌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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