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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전 법정 떠난 실무교수들 … 생생한 현장 못 따라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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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해 11월 이화여대 로스쿨에서 열린 ‘제4회 캠퍼스 열린 법정’. 당시 서울고법 민사5부가 스타벅스와 남양유업 간에 벌어진 상표권침해금지 청구소송 재판을 학생들 앞에서 진행하고 있다. [사진 서울고법]

이혼 및 양육비 청구 소송에서 부인 쪽을 대리하고 있는 K변호사(46·여)는 최근 난감한 경험을 했다. 남편 측 변호사가 “양육비 산정 기준표에 적힌 액수에서 한 푼도 더 줄 수 없다”며 요지부동이었기 때문이다. 수도권 로스쿨 1기 출신인 상대 변호사는 재판장의 조정 권유에도 “법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버텼다. 몇 차례 공전한 끝에 참다 못한 재판장이 “법전에 있는 것만 줄줄 외우지 말고 절충점을 찾으라”고 거듭 설득하자 그제야 한발 물러섰다. K 변호사는 “양육비는 당사자들의 소득 수준과 예상 수입액에 따라 적절히 가감할 필요가 있다”며 “실무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나 홀로 개업을 하는 변호사가 늘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했다.

 로스쿨이 개원한 지 6년째를 맞았지만 법학 교육의 질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법조계를 중심으로 “로스쿨에서 실무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느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본지가 전국 25개 로스쿨 전임 실무교수 297명의 경력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현직을 떠나 교수가 된 지 평균 6.3년이 지난 것으로 나타났다. 판사·검사 출신은 공직에서 사임한 지 각각 7.6년, 8.8년이 지났다. 문제는 실무 전임 교수의 경우 교수 임용 시점에 변호사협회에 휴업계를 내야 한다는 데 있다. 국가공무원법 등에서 영리활동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평균 6년 이상 경력이 단절된 실무 교수들이 과거의 경험으로 실무를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법원에서 ‘캠퍼스 열린법정’ 등의 프로그램과 사법연수원 교수 특강을 통해 실무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검사 출신인 성균관대 노명선 교수는 “교수들을 실무와 단절시켜 놓다 보니 빠르게 바뀌고 있는, 생생한 실무를 가르치기는 힘든 구조”라고 지적했다.

 과거 법대 시절 강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론 교수들의 자질 부족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한 지방 로스쿨에서는 한 교수가 자신이 지지하는 소수설을 중심으로 가르치면서 학생들의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학문적으로는 의미가 있겠지만 변호사자격시험에도, 변호사 업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로스쿨 2학년인 한모(31)씨는 “기존 법대 출신 교수들이 법 이론을 가르치던 때와는 교수법을 달리해야 하는데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수도권 로스쿨에 재학 중인 김모(27)씨는 “법조문만 읽어주면 된다고 여기는 교수들이 민법 쪽에만 5명이 있어 학생들 사이에 ‘민사 5적’이라고 불린다”며 “변호사 키우는 교육을 변호사 자격이 없는 교수들이 주도하는 데다 이들이 실무교수 과목까지 통제하고 있어 학생들만 피해를 본다”고 했다.

 또 다른 문제는 제대로 된 커리큘럼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로스쿨은 도입 초기부터 다양한 분야의 변호사를 양성한다는 명분 아래 필수 과목은 35학점으로 최소화하고 나머지는 학교와 학생 자율에 맡겼다. 이로 인해 학교와 학생들이 변호사시험 과목에만 집중하고 실제 변호사 업무에 필요한 과목들은 외면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본지 조사결과 기본 절차법인 형사소송법을 전공필수로 지정하지 않은 로스쿨은 25개 로스쿨 중 5곳이나 됐다. 또 이혼·상속 소송에 필수적인 가족법을 전공필수로 가르치는 로스쿨은 아예 없었다. 사법연수원 교수 출신인 한 부장판사는 “이혼·상속 소송은 개업 변호사 업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를 필수과목으로 정하지 않는 건 문제가 있다”며 “형사소송법을 선택과목으로 분류하다 보니 변호사가 절차조차 모르고 법정에 들어와 의뢰인이 황당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에 대한 객관적 평가자료도 부족하다. 현행 변호사법상 변호사시험 성적은 공개되지 않는다. 성적 공개 시 로스쿨이 서열화될 것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학생들 사이에 무한경쟁이 벌어진다. 로펌 등에 취업할 때 로스쿨 ‘간판’과 학점을 제외하고는 자신을 차별화할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 로스쿨 3학년인 송모(26)씨는 “스승의 날이 되면 교수님 선물 챙기기 경쟁이 붙을 정도로 학점 경쟁이 치열하다”며 “변호사 생활엔 필요하지만 학점을 잘 주지 않는 교수의 강의는 수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로스쿨 실무교수=로스쿨 교수 중 변호사 또는 외국변호사 자격이 있고 5년 이상 관련 분야 실무에 종사한 경력이 있는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로스쿨은 교원 수의 20% 이상을 전임 실무교수로 채워야 한다. 교수로 임용되면 변호사법과 국가공무원법 등에 의해 변호사 활동을 할 수 없다.

◆특별취재팀=전영선·박민제·김기환·노진호·이유정 기자, 신중후·박은서 대학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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