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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그들은 왜 방황하는가<8>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난2월10일 서울 B여고 졸업식날 일어났던 일. 졸업식을 마치고난 학생들은 각자 교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아 마지막 석별의 애틋한 정을 나누고 있었다.
갑자기 어느 교실에서「쨍그렁」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다시한번, 또 한번… 불과1∼2분 사이에 3∼4장의 유리창이 박살났다.
물론 그 장면을 같은교실의 학생들이 목격했고, 이를 전해 들은 몇몇 교사들이 현장으로 뛰어갔으나, 문제의 학생은 어디론가 종적을 감춘 후였다.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 얘기로는 평소에 얌전한 모범생으로 인정받던 K양의 짓이라는 것.

<담배물고 기념촬영>
『순간 눈앞이 캄캄하고, 누를 수없는 분노가 치밀었어요. 남학생아닌 여학생이, 그것도 평소에 믿던아이로부터 그런 일을 당했으니 말입니다.
내가 그 아이에게 도대체 무엇을 가르쳤던가 하는 생각도 함께 들더군요. 하지만 한편으로 반성이 되는 것은 무엇이 그 아이로 하여금「부숴버리고 싶을」정도의 증오을 심어줬을까 하는 것입니다. K양의 담임교사였던 김모교사의 씁쓸한 회고다.
10여년전부터 우리나라 고교졸업식장에는 묘한「바람」이 불고 있다. 졸업식이 끝나기가무섭게 바지 뒷주머니에 졸업장을 구겨넣은 채 서로의 교복과 교모를 칼로 갈기갈기 찢어 걸래조각을 만드는가 하면, 머리에 흰 밀가루와 타고 남은 연탄재를 뒤집어 쓰고, 얼굴에는 검은색 구두약과 계란반죽 칠을 하고는 때를지어 고함을 지르며 학교운동장은 물론 길거리를 헤매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림 돼버린 것이다.
특히 일부 졸업생들은 축하객들과 후배 재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소주병을 나팔부는가 하면, 교복차림에 버젓이 담배를 피워물고 기념촬영을 하기도 한다.
개중에는 모처럼 졸업기분을 내려다 뜻하지 않은 피해를 보기도했는데 지난 79년 2월 부산 D고교졸업식장에서는 졸업생끼리 서로의 교복을 찢는 우애(?)를 발휘하다가 한 학생의 등을 찢어 80여 바늘을 꿰매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고, 같은 시기 대구 D공전에서도 같은 사고가 얼어나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찢어진 교복·교모에 밀가루 범벅이 된 학생들은 그대로 스크럼을 짜고 도심으로 나와 술집 또는 유흥장으로 직행해 거리를 휩쓸고, 만취한 학생들이 밤거리를 누비며 길가는 부녀자들을 희롱하는 장면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일이 이쯤에 이르자, 문교당국은 탈선졸업식에 대한·철저한 단속을 지시했고, 그 덕분에 금년도 졸업식장은「유래없이 조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금년도 각학교 졸업식장을 돌아다녀 본 P고교 교도주임 박모교사의 말인즉 『내가 보기는 달라진 것이라곤 하나도 없더라』면서 『일시적 단속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근본문제』라고 자신의 견해를 말한다.
그러면 이처럼 소란한 「졸업 해프닝」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일선교사들의 입장인 즉, 『따지고보면 꼭 학생들만의 책임은 아니다』는 것. 서울T고교 상담교사 박미영홍씨 (41) 는 『치열한 입시경쟁에 시달리면서 정서생활이라곤 경험해 보지 못하고 이미 개체로서도 성숙해있음에도 불구, 지나치게 「제한된 틀」속에서만 살기를 강요받아 온 그들이 이같은 모든 제약이 한꺼번에 풀어지는 졸업식날 그 해방감을 폭발적으로 발산하는 것은 일면 이해가 가는 것』 이라면서, 『되도록 처벌보다는 이해를, 강요보다는 자기스스로 행동, 그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유도하는 교육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저학년땐 이해못해>
같은 학생의 입장에서 처음에는 상급생들의 그같은 행동이 납득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차차 이해가 간다』는 S고교3년 황모군(17)은 『「하라」 보다는 「하지 마라」가 월등히 많은 학교·가정·사회환경에서만 살다가, 그중 가장 큰 제약이었던「학교의 통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그날을 어찌 차분하게만 보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고려대 최재석교수 (사회학) 는 졸업식장에서의 탈선행동은 보다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면서, 『강압적이고 획일적인 고교교육 자체에 대한 학생들의 이유있는 반항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자유스런 교육풍토를 마련하는 것, 즉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교복·교모를 무작정 강요한다거나, 머리를 삭발한다거나, 남녀학생간의 교제를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하는 소극적 청소년교육에서 탈피해 적극적인 교육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우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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