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한 국민학생 90%가 남원양 씨 순창군 구미리 동성학교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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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 국민학교의 재학생 1백56명중 90%인 1백39명이 남원양씨 한성인 동성(동성)학교마을전북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구미국민학교(교장 박병식)는 6학년까지 한 학년에 한 학급씩인 법정 벽지학교.
한 학년에 타성을 가진 어린이는 2∼3명뿐 몽땅 양씨 못자리라서 출석을 부를 땐 아예 성 을 생략하는 학교다.
뿐만 아니라 모두가 한성받이이고 보면 줄줄이·인척관계가 맺어져 꼬마들끼리 할아버지·증조할아버지·아저씨·조카·고모의 항렬을 갖고있다.
6학년의 경우 한 반에 5대가 나란히 앉아 공부하는가 하면 담임선생인 양상현 교사(31)도 남원양씨라서 이 학급 영군(12)의 손자뻘이 되고있다.
모 5학년 동급생들인 규상군은 항렬상 기주군의 어엿한 할아버지이고 병숙양은 태진군의 증조할머니뻘, 순자양은 인주군의 고모가 되고있다.
그러나 어린이들에겐 어른들이 따지는 항렬이 귀찮기만 하다. 그저 여느 국민학생들처럼 다정한 친구사이일 따름이다. 끼리끼리 모여 놀고 공부하고 싸우고 욕하면서 어린이들만의 세계를 가꿔나가고 있다.『성씨가 모두 같다보니까 출석을 부를 때 성을 따로 부를 필요가 없어요. 「기주」「규상」「순자」식으로 이름만 부르지요.』
5학년을 맡고있는 범윤규 교사(35)는 아예 이름만 부르는 것이 구미국교의 전통처럼 되었다고 한다.
이학교가 들어선 구미리는 동계면소재지에서 가파른 산길 산리를 걸어 넘어 가야하는 산골.
최근 외지에서 들어간 3가구를 빼놓고는 모두 남원양씨들만 1백70가구 8백40여명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담 너머 이웃이 바로 할아버지네 이고 증조할머니 집이다.
이들 모두가 고려말 직제학을 지낸 남원양씨 수생의 직계자손들이다.
『수생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부인 이씨 할머니(정염)는 주위의 개가권유를 끝내 뿌리치시고 유븍자를 뱃속에 담은 채 개성에서 남편의 고향인 남원 땅을 찾아 천릿길을 내려오셨지요.
이씨 할머니는 남원 망에서 아들을 낳으신 후 이곳에 들어와 마을뒤쪽의 무량산(해발5백86m)의기상과 마을 앞을 흐르는 섬진강의 정기가 뛰어남을 보시고 이곳을 새로운 남원양씨 터로 잡고 뿌리를 내리셨답니다. 마을내력을 조금의 짬도 없이 줄줄 설명하는 양동규씨(51)는 마을 터가 「한양(옛 서울)터」에 못지 않은 명당이라고 자랑한다.
남원이 본관인 양씨는 물「양」자 성이 대성받이로 인구가 많으나 버들「양」자 성을 가진 인구도 거의 1만명에 이른다.
남원양씨는 고려 부종(재위1105∼1122년)매 영월 공양경문의 후손들이다.
특히 이곳 밤나무는 건국에서 가장 질이 좋아 전북대농대에서는 연구자료로 삼았을 정도. 가구 당 소득이 3백50만원을 넘어 벽지마을로는 궁하지 않은 생활을 하고있다.
동성동본끼리 모여 살다보니 이름을 짓는데 어려움도 따른다. 같은 돌림자를 써야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똑같은 이름을 짓는 수도 있다고.
이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아기를 낳으면 이름을 짓기 전에 마을 안에 같은 돌림자를 쓰는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모아놓고 이를 피해 이름을 짓는다. 그래도 구미국교에는 한자까지 똑같은 이름을 가진 남학생이 3쌍이나 된다.
『어릴 때는 서로 이름을 부르며 스스럼없이 뛰놀지만 고등학교 들어갈 나이쯤 되면 항렬을 찾게 되지요. 그렇다고 높은 항렬의 나이 어린 사람이 낮은 항렬의 손위 사람에게 반말을 해대는 일은 없어요. 서로의 항렬과 나이를 함께 견주어 서로 예우를 하지요.』
남원양씨 28대손 병춘씨(58)는 보학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곤란하지만 상부상조하는 일가간의 미덕은 앞으로도 계승될 것이라고 했다. <순창=이창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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