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가 명주실을 뽑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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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찌르릉 벌목소리 끊어진지 오래인데/굽은 가지 끝에 바람이 앉아 운다/구름장 벌어진 사이로 달이 반만 보이고 낮으로 뿌린 눈이 삼고·골로 내려 덮어/고목도 정정하여 뼈로 아림일러니/풍지에 바람이 새여 옷깃 자로 여민다.
뒷산 모퉁이로 바람이 비도는다/흰 눈이 내려 덮여 방도 여기 못 오거니 바람은 무엇을 찾아 저리 부르짖느냐.
『한야보』
하보 장응두 선생의 회심의 역작이다.
하보는 우리 시조단의 거장이었는데 불운한 생애를 살고 간 때문인지 업적만큼 문명이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다. 이 『한야보』는 한 수만 가지고라도 그는 재평가 받아야할 시인이다. 필자가 출고에서 전술한 바 있거니와 만약 판소리로 친다면 이 작품 이야말로 송만갑의 그 벌목 정정한 우람한 목소리를 듣는 듯한 장중한 목소리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살구나무 허리를 타고 살구나무 혼령이 나와/채선을 펼쳐들고 신명나는 굿을 한다/ 자줏빛 진분홍을 돌아, 또 휘어잡는 연분홍.
봄올 누룩 딛고 술을 빚는 손이 있다/헝클린 가지마다 게워 넘친 저 화사한 발효/천지를 뒤덮는 큰 잔치가 하마 가까워오나부다.
『축제』
김상옥선생의 작품이다. 화사한 봄날 가지가 휘어지게 만발한 살구꽃을 보며 정말 미치게 신명이 잡힌 작품이다. <자줏빚 진분홍을 돌아 또 휘어잡는 연분홍>그야말로 신명나게 짚고 넘어가는 굿거리장단을 보는 느낌이다. 가야금 산조에다 비긴다면 진양조도 아니요, 중몰이도 아니요, 잦은몰이도 아니요, 휘몰이 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한 빛 황토재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아래 가라앉는/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고나. 몸으로 사내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부연 들기름 불이 지지지지지지 앓고/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 갈래 만 갈래.
여율 바닥에는 잠 안자는 조약돌을/ 날 새면 하나 건져 햇볕에 비쳐 주리라/ 가다간 볼에도 대어 눈물 적셔 주리라.
『내 사랑은』
박재삼 선생의 작품이다. 누에가 명주실을 뽑듯 나굿나굿 뽑아낸 시상, 가늘고 흐느끼는 듯하나 또한 질기기가 명주실 오라기 같다. 천의무봉이란 이런 솜씨를 두고 이른 말일까.
송만갑의 창법이 우렁우렁하고 큰 도끼로 고목을 찍는 듯 하여 벌목정정이라 했다면, 이동백의창법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며, 마치 귀신이 흐느끼는 듯 하여 혼기성이라 했다던가 우리 박재삼 시인의 시법이야말로 혼기성이 수 없는 것이다.
두둥실 창파에 뜨니 하자할 것 없는 목숨/조국도 유품만 같고, 인생은 꿈이다마는/지울 수 없는 사람아 먼 돛배야 갈매기야.
『창파에 떠서』
격정 육백리 달래도 선례는 섬아/남해 쪽빛 다 마시고 초록도 울먹이는데/제 마음 이기지 못해 나도 너를 찾아왔네.
『섬』
서귀포 귤 밭에서 술래 잡던 밝은 바람/모슬포 돌아온 길엔 장다리꽃 흩어 놓고/님 오실 바다를 향해 시시덕여 갑니다.
『바람』
절도엔 어둠도 감청 향수도 물이 든다/한 가락 젓대를 불어 일만파도 다 눕히면/한나도 구름을 열고 달을 띄워 이더라.
『한라의 달』
출시「제주기행 시조」(10수) 중에서 4수만을 골라 싣는다. 시조가 꼭 무슨 의식의 심층이란 늪(?)에만 빠져 허우적거려야 된다는 법은 없다. 조금은「가」이어도 좋은 이야기다.
30년 전의 작품인데 기행시가 가지는 시조의 멋, 뭐 그런 것을 생각하며 써본 작품이다.
감상은 독자·여러분에게 맡긴다.
출고를 끝까지 읽어준 독자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다 못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단행본(중앙신서)으로 묶어 내기로 하고 붓을 놓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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