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4)<제73화>증권시장(32)|삼보증권|강성진(제자=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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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해동화재 주 파동얘기를 잠시 뒤로 미루고 삼보증권회사의 초창기 얘기를 할까한다. 내가 삼보증권을 인수한 것은 64년3월이었다. 그러니까 삼보는 필자가 설립한 것이 아니고 현재의 오리엔트시계 사장인 강영진씨가 62년에 설립한 것을 내가 인수한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필자는 62년11윌 영화증권사장자리를 스스로 물러난 후 쉬고 있었다.
그때 4대 의혹사건의 조사가 진행됐는데 동명증권의 실질적인 경영자라 하여 참고인으로 불려 다니기도 했다.
또 영화중권의 파산 후유증으로 일부 고객들로부터 고발을 당해 시달림을 받기도 했다.
앞으로 어떠한 길을 걸어갈 것 인가하고 생각해봤다. 인생의 방향을 다시 한번 결정하는 일이라 쉽지가 않았다.
여행이나 등산길에서 지난날을 돌이켜 봤다. 낚시의 찌를 바라보며 나의 장래인생을 다시 한번 구상해보기도 했다.
당시의 내 가족으로는 아내와 나이 어린 아들 둘, 딸 하나해서 모두 5명이었다.
『이제 증권의 「증」소리만 들어도 지겨우니 다른 일을 해보시는 것이 어때요』하며 아내는 새로운 일을 해보라고 권했다. 나도 이 기회에 다른 업종으로 바꾸어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증권을 떠나기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나는 증권을 많이 배웠다. 전통학문으로 서가 아니라 몸으로 직접 배웠다.
수도승의 고행 길과도 같은 것이었다.
때로는 파멸의 구렁으로 빠지기도 했고 그로 인해 고발을 당하고 조사를 받기도 했다.
갖은 고초를 다 겪으면서 증권을 배우게된 것이다. 증권은 어느덧 떼어놓을 수 없는 몸의 한 부분이 된 느낌이었다. 증권을 버릴 수 가 없었다. 내 심정을 털어놓으니 안사람은 나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필자는 자신감을 갖고 다시 증권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때에 삼보증권을 인수하게 된 것이라고.
삼보증권의 설립자인 강영진씨는 오리엔트시계의 창업자로 시계공업분야의 전문가였다. 그는 증권계가 한참 흥청거리던 62년에 삼보증권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분야가 다른 터라 별로 재미를 못 본 채 나에게 회사를 넘기고 본업으로 돌아갔다.
당시의 삼보증권은 흥사단이 관리하던 대성빌딩에 있었다.
30여평의 사무실에 14∼15명의직원에 불과한 초라한 규모였다. 현재의 이득용 고문·김성규 실장·지상동 실장 등은 후 때부터 나와 함께 일해온 창업공신인 셈이다.
나는 초라한 사장자리에 앉았다. 과거 동명이나 영화증권의 사장자리와는 달리 오너 경영자가 된 셈이다.
『이제 이 회사는 나에게 달렸다고 나는 오늘부터 임직원과 일치단결 하여 우리의 고객들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해 회사를 육성 발전시켜야겠다』는 각오를 했다.
회사를 키우려면 증권시장이 커나가야 했다. 당시의 증시상태로는 아닌 말로「밥 먹기도 힘든」상태였다.
나는 열심히 뛰기로 했다. 다행히 과거 동명증권이나 영화증권시절에 인연을 맺은 고객들 이 다시 나를 찾아주었다.
다액 거래자로부터 소액 투자자에 이르기까지 나의 새 출발을 격려해주었다.
고객들은 나날이 늘어갔다. 삼보증권을 인수한지 1년만에 거래실적 1위를 차지했다. 순전히 옛 고객들이나를 안 잊고 찾아준 덕택이었다. 특히 몇몇 다액 거래 고객들의 거래량으로 인해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거래실적1위란 업자들에겐 끈질긴 노력 끝에 마라톤경기에서 우승한 육상선수의 감격과도 비슷한 것이다.
필자는 어제도 오늘도 뛰었고 내일도 뛰어야하는 증권계의 마라톤선수인 셈이다.
필자가 새로 인수한 삼보증권이 이렇게 걸음마를 하려는 때에 해동화재주의 파동이 일어난 것이다.
필자는 어느 날 당시 해동화재주의 매수에 열을 올리고 있던 김동만씨를 만나 물어봤다.
『김 사장(당시 태양증권 대표였음), 대체·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그 아까운 공 매도를 버리고 매수 측으로 돌변했소?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거요?』
『아니오. 강 사장, 내가 사고싶어서 샀겠소? 저쪽 사람들(윤씨 계열)이 나에게 92만주나 안겨주었으니 어떻게 하겠소 사들여가면서 자금이나 좀 얻어 볼까하는 생각이었지요』
기왕에 해화 주를 상당량 갖게되었으니 이것을 이용해서 자금 따먹기나 해볼까하는 속셈이었던 것 같다.
태양증권과 함께 매수에 나선 삼보증권의 김윤각 사장도 처음에는 이러한 동기에서 해동화재 주에 손을 댔던 것 같다.
처음에는 두 사람 모두 은밀하게 해동화재 주를 사나갔다.
그러나 증권시장에서「비밀」이나「은밀」이란 존재할 수가 없는 것. 두 김 사장이·매수 측으로 나섰다는 소문은 3일이 못 가 시장주변에 쫙 퍼졌다.
어떤 사람은 놀랐고 기이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매도의 귀재로서 공매도 밖에는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매수 측으로 돌변했기 때문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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