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연극계에 새로운 바람-자기가 쓴 소설의 희곡화 「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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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소설을 원작자가 희곡으로 재구성하여 무대에 올리는 경향이 늘어가고 있다. 이문열씨가 『사람의 아들』을, 황석영씨가 『돼지꿈』을 각각 희곡화하여 성공을 거둔 뒤를 이어 이문열씨가 다시 자신의 문제작인 『들소』를, 박범신씨가 최근 단행본으로 출간돼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겨울 강 하늬바람』을 각각 희곡으로 다시 쓰고 있는데 이 같은 경향은 문단에서나 연극계에서 똑같이 「중요한 작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갈 수 없는 나라』(조해일 작) 『어둠의 자식들』(황석영 작) 등 이제까지 소설이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진 경우는 많았으나 거의가 희곡작가들에 의해 희곡으로 각색됐었고. 최인동 최인호 황석영씨 등의 경우는 아예 장르를 바꿔 창작희곡을 발표, 무대에·올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작자에 의한 소세의 희곡화작업이 문학적인 측면에서 이야기돼야 하느냐. 연극적인 측면에서 이야기 돼야하느냐는 새로운 문제를 재기하고 있는 것이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최인동 작), 『달리는 바보들』(최인호 작), 『항파두리놀이』(황석영 작) 등이 희곡으로서의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작가가 창작으로 발표한 것인데 반해 소설의 희곡화작업은 일단은 창작으로 볼 수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다. 그 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은 문학과 연극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의 실험적 접합용 시도한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다고
박범신씨의 『겨울 강 하늬바람』은 극단 「에저또」에 의해 6월18일부터 1주일간 서울동숭동 문예회관 대강당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이 작품은 부모를 토착지배세력의 횡포에 의해 비참하게 잃고 마을을 떠났던 10대가 도시에서 성공하여 돌아와 지배세력이었던 일가에 대한 철저한 복수를 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이 소실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마성을 파헤치려고 했다는 박씨는 『인물의 분위기를 집중적으로 그려내는데는 희곡 쪽이 소설보다 적합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다. 미친 바람 같은 분위기 속에 한인간의 내적 긴장을 표현하는 과정이 무대라는 공간을 통해 더 jf실하게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박씨는 희곡으로 각색하면서 소설에서 가능했던 상황의 변동이나 스토리는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원래 소설은 절반 가까이가 국민학교에 다니는 소년의 눈을 통해 그려지고 있으나 희곡에서는 소년을 등장시키지 않았다. 또 공장건설과 이률 막고있는 고분군이란 상황을 통해 한 마을이 변모하는 리얼한 모습도 그릴 수 없게됐다.
그 대신 마성을 가진 주인공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으로 인간의 본질문제를 깊이 있게 다룰 예정이다.
이문열씨의 『들소』는 이 씨의 중편 중 가장 짜임새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는 작품.
신석기시대를 무대로 지배계급의 형성과 이에 반항하는 자유로운 정신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3막으로 예정되어 있는 희곡에서 이씨는 소설의 스토리는 대개 그대로 살리려하고 있다.
다만 소실의 전반부인 주인공의 유년시절을 줄인 대신에 자유를 지키는 예술가로서의 사명감을 느끼게되는 후반부를 집중 조명하려고 계획하고 있다고
이 씨는 신석기 시대를 어떻게 무대로 꾸미는가, 그 당시의 의상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등의 문제로 고심중이다.
자신의 소설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이·박씨가 가장 애썼던 것은 소설과는 다른 희곡의 디테일 한 기교.
그러나 『소설가이기 때문에 희곡에서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다』는 아마추어적 태도는 지양하겠다는 각오다.
소설가가 희곡을 쓰는데 대해 최인훈씨는 『소설로 표현하기보다 희곡의 형태에 알 맞는 소재가 있으며 그러한 소재가 있을때 희곡을 쑬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은 유익한 일』 이라고 말하고있다.
최인호씨도 『희곡의 장점은 단일한 공간에서 단일한 효과를 강조하는데는 희곡이 유리하다고 생각하여 희곡을 썼으며 희곡창작을 통해 작가의 상상력이나 테마의식을 확대할 수 있다고 보고있다.
이문열씨는 『희곡은 소설에 비해 치열한 문학장르라는 것을 이번 「들소」를 각색하면서 다시 느끼게된다』고 말하고 희곡 『들소』는 완전한 재구성·재창작이라는 자세로 썼다고 강조했다.
박씨도 이미 있던 소설을 희곡으로 만든다기 보다 새 작품을 쓰는 작업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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