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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네덜란드-거의가 무역상…한국상품 진출에 한 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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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더치·페이」란 말이 상징하듯 계산에 밝고 상술이 뛰어난 화란에는 3백30여명의 한국인이 살고있다.
서울에서 파견된 14개 무역상사의 주재원과 그들의 가족 l백여명을 뺀 나머지 2백30여 정착교포들도 거의 모두가 무역을 생업으로 하고있다.
화란 교포들은 이를테면 60년대 이후 산업한국이 키워낸 본격적 화이트칼러 장사꾼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른 어느 나라 교포들보다 높은 소득수준과 교포들간에 굳은 친화력을 보여 주고있다.
업무활동이 주로 한국상품을 수하여 화란에서 팔거나 동구권에 중계하는 것이어서 교포들의 서울나들이가 비교적 잦다. 때문에 고국의 내정 문제를 제3자적 입장에서 파악한답시고 엉뚱한 주장을 펴 공격하거나 비난하는 반한 교포는 아예 없으며 오히려 서울의 경기가 좋아야 나도 잘 살수 있다는 짙은 연대의식이 교포사회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이들의 정착과정에서 보이고 있는 특징은 처음부터 이민을 전제로 봇짐을 싸서 서울을 떠나온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연평균 외형 거래액이 5백만 달러(33억5천만원) 선에 이르고있는 대부분의 교포무역업자들은 상주 주재원 출신으로서 전직을 십분 활용, 그만큼 장사도 잘하고있다.
서울에서 섬유류를 수입해 이곳 백화점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있는 윤여병씨는 이주 경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 코트라(무역진홍공사) 직원으로 「암스테르담」에 와 3년간 근무했습니다. 근무를 끝내고 귀국했더니 모 상사에서 화란 주재원으로 가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서울의 생활이 봉급도 적고 따분하던 때라 좋다고 했죠. 그 회사 주재원으로 3년간 다시 근무하다보니 차츰 장사의 묘미도 느끼게 됐고 화란인들과의 교제폭도 넓어졌습니다. 혼자 독립해 장사를 해도 되겠다는 꾀가 생기더군요..
소속회사에 대한 다소간의 죄책감 속에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고 조그만 무역회사를 차렸습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교포 무역업자들은 윤씨와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이들이 비교적 쉽게 독립할 수 있었던 것은 화란 특유의 상거래 풍토 때문이기도 하다.
몇 백년에 걸쳐 중상주의로 부를 축적해 온 화란사람들은 장사를 하는데 있어 국적과 인종을 차별 않기로 유명하다. 요즘은 원유의 암시장(스파트·마케트)으로 명성을 펼치고 있는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은 세계적 무역센터로 구주에서 영어가 가장 활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듯 세계각국의 상인들이 각축하는 곳에서 터득한 요령과 자신감이 한국인의 재능·성질과 조화를 이룬 것이다.
한국무역업자들은 대 소 각국 무역회사들로 꽉 들어 차 있는 「암스테르담」상공회의소 건물에 사무실을 차리고 작년에만 이 땅에 1억2천만 달러(8백4억원) 어치의 한국상품을 팔았다. 이는 우리의 8번째 큰 수출 대상 국인 화란에 수출한 총 거래고 (3억7천만 달러)의 3분의1에 해당하며 품목은 섬유류가 대종을 이루고있다.
연하귀주화란대사는 『한국이 이 나라에 판 양말의 물량을 계산하면 화란 국민 모두가 1년에 한 사람 당 5켤레를 신는 골이 된다』고 말했다.
화란의 교포 무역업자들이 우리의 대 동구권 교역에 기여하는 비중 또한 상당히 높다.
화란은 구주 국가 중 대 동구 직접교역과 3각 중계 무역 망이 비교적 많은 나라로서 한국의 동구권 진출에 창구역할을 하고있다.
매주 두번 「암스테르담」공항에 내리는 KAL 747 점보 화물기에는 동구로 가는 화용이 상당부분 들어있다 이것은 대개 동구·「유고」·「루마니아」·「체코」로 가는 것인데 주는 한국상사나 교포업자들의 의뢰를 받은 화란사람으로 되어있다.
지금까지 교포업자들이 동구에서 온 상인들을 직접 만나 상담을 벌이는데는 제약이 많았다.
황용오씨는 『동구권 사람을 만나려면 우선 우리 공관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그 과정이 노출되면 상대방이 이쪽 신분을 의심하기 때문에 애로가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국내의 반공법이 개정됨으로써 그 같은 장벽은 차차 허물어질 것이며 실리외교가 민간화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교포업자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또 한가지 대 동구교역에서 고충을 겪는 것은 동구의 무역스타일이 일종의 물물교환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의 교역에서 얻을 수 있는 반대급부가 제시되지 않으면 잘 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봉규 주「암스테르담」 총 영사는 『동구와의 교역을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미 수교국과 같은 「패턴」으로 하려고 한다면 오산이다. 실리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정치 외교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상품의 수출보다는 동구의 원자재를 수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화란의 교포들은 대부분 윌 평균 수입 10만 길더 (3천3백만원) 대를 오르내리는 고소득층이다. 세금이 워낙 높아 실수입은 거의 5분의l 정도로 떨어지지만 저축하고 생활을 즐기기에는 충분한 벌이다.
그래서 그런지 화난 교포들은 다른 곳과는 달리 모두 여유가 있고 기를 쓰고 교민회장을 하려고 다투는 사람도 없으며 주말마다 갖는 골프대회는 항상 성황을 이룬다.
「헤이그」에 있는 이준 열사 묘역에도 3백65일 내내 생화가 꽂혀있다.
교포들 중에는 아예 l백 달러 씩 꽃장수에게 꽃값을 선불하고 돈이 떨어질 때까지 상화를 부탁하는 사람도 있다.
「필립스」 팀의 허정무 선수가 뛰는 날이면 몇 세대가 떼를 지어 웅원을 가기도 한다.
「헤이그」의 「라이덴」 대학교에는 한국어과가 있고 「F·포스」과장은 3국유사를 화란어로 번역 중에 있다. 【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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