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넘치는 정한·여유가 시조의 생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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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 시인이 어느 노 시인에게 물어보았다 한다. 『옛날에는 이론이니 평론이니 하는 것이 없었어도 곧잘 불후의 명작들이 나왔는데 요즘은 그 요란스런 평론이니 무슨 주의이니 하는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그렇지 못한 까닭이 무엇입니까』하고.
그랬더니 노 시인 왈 『옛날 시용이나 문객들은 붓만 들면 붓끝에 그 「신명」이라는 게 따라왔지만 지금 시인들은 그 「신명」이라는 것에 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더란다. 옳은 말씀이다. 시의 기능공은 많아도 시의 장인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야마는,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 못 이뤄 하노라.
고려 충혜왕 때 병조판서 이조년의 시다. 지금으로부터 6, 7백년을 격한 그 시절에도 벌써 사람의 정한은 배꽃 핀 삼갱, 일지춘심에 달빛을 앉힐 줄 알았던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 「월백」이니, 「은한」이니, 「일지춘심」이니를 쓰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작품 속에 숨어있는 시정신의 멋, 정과 한이 한 자락강물 만한 것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날 저물거든 꽃에서나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청구영언」에 질려있는 실명씨의 작품이다. 아니 애시당초 이름 3자도 남기기가 싫었던 무명씨의 작품이다. 이 허무, 이 낙막, 페이소스라면 이만한 페이소스가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이 고시조들에서 그 외형적인 것을 따오자는 것이 아니라 그 여유, 그 풍도의 정신을 배우자는 것이다.
시에서건 생활에서건 모두가 모두 왜소일로를 치달아 소위 그 장자지풍이라는, 동양선비의 「유장」이라는 것을 보지 못할 날이 올까봐 두렵다. 동양화의 멋이 여백에 있고 거문고나 가야금의 율조가 그 굴절과 단속에 있듯이, 우리 시조의 참 멋이란 장과 장사이의 여운에 있는 것인데 요즘 유행하는 그 디스코 춤을 추듯 말로만 빽빽히 메워버린다면 하늘도 감아 넘기던 승무의 소매 자락 같은 것은 어디 가서 찾아볼 것인가 말이다.
사람이 그 몇 생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몇 겁이나 전화해야 금강의 물이 되나! 금강의 물이 되나!
샘도 강도 바다도 말고. 옥류수렴 진주담과 만폭동 다 고만두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새벽 안개. 풀 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팔담 함께 흘러,
구룡연 천척절애에 한번 굴러보느냐.
조운의 『구룡폭포』라는 사설시조이다. 진실로 금강에 서서 구룡폭포의 실경을 본다한들 어떻게 이렇게 장관이기야 하겠는가.
백문이불여 일견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시에 있어서는 천만의 말씀이다. 이 환희, 이 비애, 이 목숨의 통한을 보라. 이는 개인이 있어 이 설움을 그리겠는가? 어느 악인이 있어 이 지애를 탄주하겠는가? 이 거장이 간후 시조를 한다는 시인이 이제 2백으로 헤아린다. 사설시조를 쓴다는 시인도 적지 않이 있긴 있다. 그러나, 그러나다. 복판을 올려야 변죽이 울지 변죽만을 더듬어서야 복판이 울겠는가. 아무 말이나 구겨 박는 다고 사설시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구름은 월출산에
끊이락 또 이으락
그저 한양으로
나올게 바라봐도
묘수는 오르락내리락
영산강구로구나
역시 「나올제 바라봐도」라는 조운의 작품이다. <조수만 오르락내리락 형산강구로구나>한짐 져다 부려놓은들 이에 더 후련하겠는가.
어떻게 살면 어떻고, 어떻게 죽으면 어떠랴/나고 살고 죽음이 무엇이면 무엇하랴/대하는 소리를 거두고 흐를 대로 흐른다.
이호우의 『하』라는 단수다. 예까지는 왔다. 장차 누가 있어 이 풍도, 이 장류를 이어 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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