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말못할 사연…떳떳하지 못한 의뢰 돈 떼이고도 「벙어리 냉가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무엇이든지 도와드립니다』-. 「답답한 마음」들에게는 이처럼 반가운 소리가 없다. 결혼상대자의 족보에서부터 과거는 물론 무슨 병을 앓았는지 병력까지 조사해준다는 정보사업의 일종인 「심부름 센터」는 실은 말못할 사정의 서민들을 울려온 신종범죄조직이었다.
이들이 노린 것은 의뢰인의 대부분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딱한 사정을 갖고 있어 막상 일이 잘 안돼도 의뢰인이 어디다 호소할 수 없는 약점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번에 경찰에 검거된 무허가「심부름 센터」들도 주민등록증사본 떼 주기, 등기부등본사본 떼 주기, 진정서 대필 등 「시시한」의뢰보다는 남녀간의 불륜관계, 상대방의 비위사실을 조사의뢰 해오는 고객을 반가이 맞았다.
이런 경우 우선 착수금을 두둑하게 받아낼 수 있고 「자연뻥」(일이 잘된 경우)이면 더욱 좋고 설사 조사가 실패하더라도 의뢰인이 다른 곳에다 『착수금을 떼었다』며 하소연할만한 내용이 못되고 보면 그들의 사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박모씨(36·여·경기도 수원시 연무동)는 지난달 10일 광고를 보고 「심부름센터」인 「한국컨설턴트」를 찾았다. 같은 회사의 여직원과 한달 째 행방을 감춘 남편 이모씨(39·B실업 경리부장)의 은신처를 찾아달라고 의뢰했다. 친구나 친정에는 남편이 장기출장 중이라고 속이고 한달 동안 애태운 박씨가 고민 끝에 찾아 나선 것이다.
내용을 듣고 난 「소장님」(이기준·31·구속)은 『3주일 안에 끝내준다』는 것이었다. 약속기일을 못 지키면 착수금을 반환한다는 「소장님」의 호언장담에 박씨는 선뜻 30만원을 착수금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3주일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 박씨가 찾아가자 이번에는 남편 이씨를 찾는 「현상금30만원」의 전단 8천장(인쇄비용 8만원)을 내보이며 현상금30만원을 더 내라고 했다.
경찰에 나온 박씨는 『때맞춰 경찰이 소장 이씨를 잡지 않았으면 또 30만원을 낼 뻔했다』고 말했다.
『근무하는 날 밤에는 꼭 외박하는 아내의 불륜관계를 밝혀주십시오.』
격일근무를 하는 공무원 차모씨(43·서울홍제동)는 착수금 20만원을 뜯긴 케이스.
역시 3주일이 시한이었으나 담당인 「실장님」 고일호씨(36·구속·절도전과9범)는 『카바레에서 춤추는 것은 확인했으나 결정적(?)인 순간을 못 잡았다』며 시일을 끌었다.
이밖에도 피해자들은 대부분이 남편 몰래 빚을 주었다가 떼인 가정주부, 속아서 몸을 뺏긴 직장여성, 바람나 가출한 딸을 찾는 공무원 등으로 의뢰당시 가명을 사용, 경찰은 피해자조사에 진땀을 빼기도 했다.
아내의 불륜을 조사 의뢰했던 차씨도 가명사용자로 『착수금을 준 일이 없다. 의뢰한 일도 없다』고 딱 잡아떼다 범인들과 대질하고서야 피해자조사에 응했다.
이들의 사무실은 거의 2평정도의 크기에 전화기 1대 정도로 책상 위에 놓인 「소장」 「실장」의 자개명패가 오히려 그럴듯하다.
순수한 심부름을 해주는 곳으로 위장하기 위해 2∼3명의 심부름꾼을 고용, 이들에겐 주민등록표 떼 주기 등의 「시시한」일을 시키고 두둑한 착수금 거리엔 바로 「소장」 「실장」들이 나선다. 「한국컨설턴트」의 경우 자신들의 겉 다르고 속 다른 사업내용이 드러날까 봐 심부름꾼을 매월 갈아치우는 수법을 써왔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서울에 등장하기 시작한 「심부름센터」는 현재 30여 군대. 「소장님」 「실장님」이 한 달에 3∼4건씩 맡아 눈 코 뜰새 없이 바쁠 만큼 의뢰건수가 많다는 것이다.
『일찍 손을 댄 것이 다행이긴 하지만 부부사이에도 뒤를 밟을 만큼 못 믿게된 요즘의 사회풍조가 바로 일부「심부름센터」의 불법변태영업이라는 독버섯을 키웠다』고 한 수사관계자는 개탄했다. <오홍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