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소지 아리송한 교통사고재판 5개월 「얼굴없는 증인」을 찾아라|"형의 잘못이었다"…가짜동생이 현장상황 진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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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가공인물의 진술을 첨부한 도로교통법위반 및 업무상과실치상사건이 법원에 송치돼 5개월 째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사고의 피해자가 혼수상태에 있는 사이 경찰이 자칭 「피해자의 동생」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신원도 확인하지 않은 채 피해자에게 불리한 조서를 받아 사건을 송치해버렸으며 경찰도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내지 못한 채 그대로 기소해 버린 것이다. 더욱이 사고의 잘 잘못을 가리는 결정적 증거물인 오토바이를 경찰이 수리까지 해 타고 다녔음이 드러났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지난해 4월17일 교통사고를 당해 한차례의 뇌수술과 두 번의 다리절단수술까지 받고 1년이 다된 현재까지 병원에 입원중인 윤경삼씨(35·상업·서울 화곡동산21)와 엉뚱하게 피의자로 몰려 재판을 받고있다고 주장하는 최길현씨(38·상업·화곡4동796의11).
최씨는 지난해 4월17일 밤 11시15분쯤 친구인 윤씨를 자신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태우고 구로동과 고척동을 연결하는 고척교를 지나던 중 뒤따라온 서울5사4734호 시내버스에 떠 받혔다(이 부분에 대해 경찰은 최씨의 오토바이가 약20㎝높이의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순간 타고있던 두 사람이 튕겨 떨어졌고 이때 뒤따라오던 버스에 치였다고 하는 한편 최씨는 1차선을 타고 가던 중 버스가 뒤에서 떠받았다고 주장하고있다).
이 사고로 최씨는 윗이빨 7개가 부러지고 오른손목이 골절되는 등 전치6주의 상처를 입었으며 윤씨는 버스뒷바퀴에 양다리가 깔려 부려지고 뇌에 심한 충격을 받는 등 중상을 입어 4개월 동안 의식불명상태에서 뇌수술과 두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아야했다.
경찰이 피해자조서를 작성한 것은 윤씨가 혼수상태에 있던 4월18일. 사건 바로 다음날이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영등포경찰서 이모형사는 피해자 윤씨의 동생이라며 제 발로 출두한「윤경태」씨로부터 『…오토바이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아 차도에 떨어지는 순간 마침 뒤따라오던 시내버스 뒷바퀴에 다리가 깔렸다는 말을 들었다』는 진술을 받았다.
이는 사고의 1차 원인이 피해자 윤씨가 타고 가던 오토바이에 있다는 것으로 교통사고 피해를 함께 당한 윤씨의 친구 최씨에게는 결정적으로 불리한 진술이다.
이 같은 진술에 대해 피해자 윤씨는 『자신이 3형제 중 막내이기 때문에 나를 형이라고 부를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 「윤경태」란 이름은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설령 동생이 있더라도 그 당시(4월18일)자신이 혼수상태에 있었는데 어떻게 사고의 개요를 다른 사람에게 자세히 말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하고있다.
당시 경찰조사에서 「윤경태」란 사람은 『다친 형의 인적사항을 알고있느냐』는 물음에 『본적과 주소가 나와 같은 윤경삼』이라고 대답했으나 윤씨의 본적 「충북보은」과는 다른「충남서산」으로 적었다. 조서에는 필수적으로 확인해야하는 진술자의 주민등록증번호조차 기재되어 있기 않다.
또 이사건의 원인규명에 결정적인 증거물이 될 오토바이는 사고당시 짐받이부분과 배기통 등이 충격을 받아 쭈그러들었는데도 사고가 난 다리 입구 검문소의 모모순경이 뒷바퀴의 프레임을 수리까지 하고 타고 다녔다는 것이다.
경찰은 사건직후 버스운전사 양운석씨(39)를 오토바이를 몬 최씨와 함께 불구속으로 입건했으나 버스운전사는 검찰에서 무혐의로 풀려났다.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지검 남부지청 김태정 검사는 경찰조서와는 관계없이 몇 차례의 현장조사를 끝냈으며 운전사 양씨와 양씨가 운전하는 버스 뒤를 따라오면서 사고현장을 목격했던 시내버스 운전사 황인성씨(39)의 진술(안씨의 오토바이가 1차선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것을 보았다는)등으로 미뤄 과실이 최씨 측에게 있다고 했다.
검찰은 가공인물이 피해자의 가족을 사칭했다는데 대해서는 아는바 없으나 정식으로 수사를 요청하면 수사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 형사는 『동생이라며 찾아와서 진술하니까 그런 줄 알고 조서를 작성했다』고만 말하고 있다. <김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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