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화 증권시장|대 증권 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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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58년 1·16국채파동 이후 증시는 한동안 침체의 수렁을 헤어나질 못했다. 책동전을 벌였던 당사자들이야 손해를 봤어도 달리 할말이 없었겠으나 틈바구니에서 억울하게 피해를 본 선의의 투자자들을 실망시킨 것이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다.
실추된 공신력의 조속한 회복도 문제지만 점차 가중되는 자금난의 해소가 시급했다.
마비상태에 빠진 기계를 다시 돌리기 위해서는 한동이의 물이라도 길어다 부어야하는 그런 형편이었다.
국채파동의 수습을 위해 거래소의 새 이사장에 취임한 윤인상씨는 즉시 증권거래소의 증자를 결심했다.
당시 자본금은 1,2차 증자를 거쳐 5억원이었다. 1억원의 3차 증자를 염두에 둔 윤이사장은 우선 당초 약속했던 6%의 배당을 처음 실시했다.
고기를 잡으려면 최소한의 미끼를 던져야했던 것이다. 액면가를 밑도는 주가수준을 가지고 증자하려니 적어도 약속한 것은 지킨다는 결의라도 보여주자는 의도에서였다.
3차 증자는 금융단·보험단 등 기관투자가들에게만 인수시켰던 종래 방법과는 달리 일반공모도 함께 실시했다는 점이 특기할만한 일이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3차 증자는 무사히 계획대로 끝났고 여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58년4월 증권거래법이 국회에 제출되면서 2차 파동인 이른바 대 증권파동의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당시 제출된 증권거래법에 따르면 거래소의 조직이 주식회사 또는 회원제의 양자택일이 거의 확실했으므로 장차 거래소의 재산과 운영의 이니셔티브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촉발된 것이다.
즉 주식회사로 될 경우에는 거래소의 출자증권을 많이 가지고있는 사람이 운영권을 쥐게 될 것이고, 회원제가 된다고 해도 거래소의 보유재산을 재평가하면 막대한 무상재산을 배정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출자증권의 시세는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48전 하던 것이 금세 50전대를 돌파했고 90전까지 뛰어올랐다.
수습에 나선 거래소는 금융단과 보험단의 합의하에 양측이 보유하고 있는 출자증권을 풀어 폭등세를 꺾으려 했다.
그러나 당시 매방측의 총수격인 경희증권은 이 같은 계획을 미리 알아차리고 충분한 자금을 동원해 매수작전의 고삐를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국채파동의 뼈아픈 체험을 한 거래소측도 이번에는 단호한 결의로 버텨나갔다. 가격전만 치열했을 뿐 국채파동 같은 다른 부작용은 없었다.
이 같은 책동전은 95전을 고비로 7월까지 계속되었으나 경희증권측도 그 동안 워낙 고가로 매입했던 것이 부담이 되어 심한 자금난에 빠져들게 되었다.
8월 들면서 일부 매방측에서 그 동안 사잰 증권을 토해놓기 시작하면서 시세는 50전까지 떨어졌고, 드디어 8월14일 경희증권이 스스로 문을 닫아 5개월 동안의 대증권책동전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파동은 1·16국채파동의 여파로 극심한 침체에 빠졌던 증시에 어쨌든 활기를 불어넣어 증자를 용이하게 했고 또 금융단과 보험단에 묶여있는 증권을 일반에게 분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좋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주가가 갑절로 뛰었고 이를 사들인 선의의 투자자들에게 주가폭락에 따른 막대한 피해를 안겨줌으로써 증시의 공신력을 또 한차례 실추시켰음을 부인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사태수습과정에서 4차 증자문제로 재무부와 거래소의 사이가 벌어져 결국 윤인상이사장의 사임으로까지 몰고 갔다.
거래소측으로서는 폭등하는 주가의 진정을 위해서는 증자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여러 차례 재무부측에 이를 요청했었다.
당시 재무부장관이던 송인상씨는 얼른 단안을 내리지 못한 채 장관실로 관계자들을 불러모았다.
윤인상 거래소이사장·김룡제전무·김진형한은총재, 그리고 필자도 실무자의 입장에서 이 회의에 불려갔다.
윤인상씨와 김룡제씨는 강력히 증자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나 김진형 한은총재는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필자 역시 사태의 수습뿐 아니라 증시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지금이 증자의 호기라고 주장했다.
각자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송장관은 『증자의 시기를 재검토하자』는 말로 그날의 회의를 끝냈다.
그 다음날 바로 윤인상씨는 사표를 제출했고 3대 거래소이사장에 박승준씨가 취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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