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과 품위 고루 높였으면"|「신문의 날」에 한국신문을 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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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문의 날」에 한국의 신문을 생각해본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문에도 어떤 품위와 성격이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신문은 한 사회의 언론매체로서. 문화기관으로서, 또 국민의 공기로서의 일정한 품위가 있어야 하고, 또 하나 하나의 신문은 나름대로의 개성과 성격을 지니고 있을 때, 독자들도 신문을 사랑하고 믿고, 아끼고 지켜줄 것이다.
신문이 독자들의 눈에 지나치게 장사속을 차린다고 보여질 때, 또는 뚜렷한 정견도 없고 자신도 없이 여론이나 대세에 적당히 아첨하는 비굴함을 보여즐 때,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횡포한 모습을 드러낼 때, 억울한 사람의 명예와 인권을 유린하고도 태연자약한 흉기로 둔갑을 할때, 알릴 것은 알리지 않고 알리지 않을 것을 크게 다루어 그 안목과 책임의식이 의심스럽게 느껴질 때, 창의성과 개성을 보여주지 않고 안이한 타성에 의해서 신문이 꾸며지고 있을 때, 그리고 신문에서 도대체 읽을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 독자들은 신문을 믿지 않게 되고, 사랑하지 않게 되고 또 아껴주지 않게 된다.
신문을 읽는 일은 거의 모든 사람들의 중요한 일과의 하나가 되어 있다. 아침 저녁으로 사람들은 그날 그날의 중요한 사건에 대한 정보와 생활정보를 신문을 통해서 흡수하고 그에따라 필요한 행동의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공공의 관심사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태도를 형성하기도 한다.
독자들이 필요한 정보를 적당히 흡수한 다음에 그 신문은 대부분 휴지로 화해서 쓰레기통에 들어가거나 폐지로 이용되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처럼 신문 한장 한장의 수명은 매우 짧은 것이고 제한된 효용밖에 갖지 않는 것이기는 하지만, 신문을 매일 대하고 읽는 독자들은 신문의 품위와 성격을 느낄 수 있으며, 마치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처럼 신문이 가진 품위와 성격을 사랑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며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는 정서적 반응까지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독자들은 한국의 신문이 기술적인 측면에서, 양과 질적인 측면에서 그 동안 많이 발전하고 성장해 왔음을 잘 알고 있다. 또 신문이 독자를 위해서 또 사회의 발전을 의해서 많은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해 왔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들은 한국의 신문들이 그 품위에 있어서 또 그 창의성과 개성에 있어서 얼마나 더 향상 되었느냐고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선뜻 긍정적인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의 신문이 그 품위와 창의성에 있어서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한데에는 신문외적인 원인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신문자체의 노력으로 시급히 개선해야 되지 않을까하고 느껴지는 몇가지를 지적해 두고 싶다.
첫째로, 한국의 신문에서는 일관성 있는 뚜렷한 주견과 주장을 좀저럼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같은 날 같은 신문의 어느 기사에서는 문화의 주체성을 강조하고있는데 대중문화를 다룬 다른 기사에서는 기사전체가 외국말로만 이어질 정도로 외국의 유행 음악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우리 나라의 교육제도를 다루는 기사들에서 특히 많이 느끼는 것은 신문들이 병주고 약주는 식의 무책임 하고 무정견한 태도를 보이는 때가 많다는 점이다.
보다 심층적으로 교육문제에 관한 문제점을 충분히 파악한 다음에 기사가 다루어져야 한다면, 신문사내에서 기자·편집인·논설위원들이 모여 교육문제에 관한 깊이있는 세미나를 몇 번이라도 되풀이해서 가짐으로써 적어도 그 문제에 관한 바른 방향감각이라도 일관성 있게 가길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로, 한국의 신문이 개선해야할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점은 신문의 편집이 너무 백화점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좁은 지면에 너무 많은 종류의 기사를 골고루 나열하다 보면결과적으로 모든 기사가 깊이가 없는 피상적인 기사가 되기쉽고, 그저 구색을 갖추기 위해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말하자면 골고루 점포를 갖추다 보니까 하나 하나의 점포가 모두 구멍가게가 되어버린 느낌을 주는 것이다. 『신문이 구멍가게를 모아놓은 것 같은 편집을 하기보다는 가게수가 줌 줄어들더라도 기사 하나 하나가 알찬 내용을 깊이 있게 다루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 독자의 기대이고, 간단하게라도 곡 독자에게 알려야할 기사들은「소식란」과 같은 곳에서 한테 모아 실어도 좋을 것이다.
한 독자의 엉뚱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신문의 지면이 꼭 정치면·경제면·사회면 하는 식으로 구획을 지어 나누어져 있어야하고, 그러한 체제가 신문마다 꼭 같아야 하느냐에 대해서도 나는 가끔 의문을 품을 때가 있다.
세째로, 한국의 신문은 좀 더 한자를 줄이고 한글을 많이 써야 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다. 신문은 대중매체이고, 한 사람이라도 독자가 더 많이 보고 더 많은 정보를 얻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면 오늘날의 한국의 신문은 한자를 잘 모르는 많은 독자들(한글세대만을 이야기 하는것이 아니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네째로, 최근에 증면이 단행된 이후독자들은 신문이 더 많은 정보를 더 깊이있고 더 특색있게 다루어줄 것으로 기대 했던데 비해, 최근의 신문이 종전과 달라진 것은 대중문화가 더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과 연재소설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것이 독자들의 반응인것 같다. 독자들은 늘어난 4면이 그렇게 밖에 처리되어질 수 밖에 없다면 증면의 의의가 조금도 없는 것 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의 신문들이 이번 기회에 한 걸음 더 진전하고 한 단계 더 향상되어지는 편집을 꼭 실현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끝으로 한국의 신문은 이제 어떻게 하면 하나하나의 신문이 품위와 성격을 갖추는 신문이 되어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모든 노력을 다해주기를 기대한다. 긴 안목으로 볼때에는 신문의 판매 부수가 늘어나는 것도 상업주의적인 얄팍한 수법보다는 그 신문의 품위와 성격에 달려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신문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혼란과 변화 속에서 정론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탐구해야 한다. 정론은 바른 역사인식과 사회의식, 문화의식 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면 한국의 신문은 역사앞에, 국가앞에, 그리고 국민 앞에서 책임있는 정견을 스스로 세울 수 있어야한다.
신문이 그와같은 노력을 게을리 할때 한국의 신문은 영원히 그 품위와 개성을 가질 수가 없을 것이다.
품위와 개성이 없는 신문은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없으며, 독자의 신뢰도 받을 수가 없을 것이다. 「신문의 날」 이 올 때마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되풀이하고 같은 주문을 향해 말해 왔다. 돌아오는 해의 「신문의 날」 에는 신문의 발전을 축하하는 말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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