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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6)<제73화>증권시장(14)|증권거래소 설립|이현상<제자=필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증권협회와 증권금융이 세워진 것은 당시로서는 허허벌판에 두개의 단단한 초석이 세워진 것이나 진배없었다.
증권계의 숙원이던 거래소 설립추진도 급속도로 진전되어 나갔고 재무부 측도 적극적으로 나서줬다.
특히 재무부차관이었던 윤인상씨의 도움은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일 증권거래소 이사장직을 맡기도 했던 윤씨는 기본적으로 증권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없이는 우리경제가 잘 될 수 없다는 확고한 소신을 가진 인물이었다.
심지어 그는 상공부차관으로 있을 때부터 증시육성의 필요성을 주장했다가 신문의·극렬한 공박을 받기도 했으나 오히려 이에 굽히지 않고 공청회를 열어 진부를 가리자고 맞설 정도로 당당한 이론가였다.
증권시장을 투기장이라고 몰아 붙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공정한 증권가격의 형성을 위해서는 오히려 하루빨리 증권거래소를 설립해야한다는 지론이었다.
윤 차관은 자기 방으로 송대순씨 등 증권계 주요 인사들을 불러 간담회를 열었다. 정부로서도 거래소 개설을 위해 최선을 다할 터이니 업계에서도 자금을 최대한 염출할 것을 종용했다.
자본금을 3억원 규모로 하고 우선 증권거래소 설립위원회를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간담회의 합의내용에 따라 김현철 재무장관은 윤 차관을 설립위원장에 선임하고 그밖에 한은·산은총재 등 금융계 주요인사까지 포함시켜 증권거래소 설립위원회가 정식으로 발족되었다.
이 위원회는 3차의 모임을 통해 설립 윤곽을 마무리 짓고 초대증권거래소 이사장에 전찬, 상무이사에 박규달, 이사에 송대순·유기룡·김창영·최상건·강창용, 상무감사에 최도용, 감사에 이상실씨 등이 임명되었다.
대한증권거래소의 설립과정에서 꼭 기록에 남기고싶은 점이 있다.
앞서 간단히 소개한바 처럼 행정적으로는 모든 일이 원만하게 진행되어 나갔으나 막상 법적으로는 설립 등기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빠지게 된 것이다.
당초 계획으로는 조선증권 취인소령을 법적 근거로 삼아 설립인가를 내줄 심산이었다. 그러나 이 법에 의해서 설립되었던 구 조선증권 취인소가 아직 청산 완료 등기를 끝내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으므로 법률상으로는 일제하의 취인소가 그대로 살아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 이 법에 따라 새로운 증권거래소를 세운다는 것은 법률적으로 엄연한 모순이었다.
뒤늦게 이같은 사실을 발견했으니 여간 당황스런 일이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사실대로 이치령 이재국장과 윤인상 차관에게 보고했다.
놀라기는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떠한 지원도 아끼지 않을 터이니 일체 의부에 이 사실을 발설하지 말고 무슨 수롤 쓰든지 등기를 해내라고 지시했다.
고민 끝에 다짜고짜 서울지방법원의 임한경 원장실을 찾아갔다. 그는 다행히 경기고 선배였다.
까다롭게 구는 비서에게 고등학교 후배인데, 재무부에서 공무로 왔다고 적당히 둘러댔다.
임 원장 앞에 서자 무조건 살려달라고 매달렸다. 무슨 영문인지 알리 없는 임 원장은 대체 무슨 일이냐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초지종을 절명하자 『그냥은 안되겠고 연구를 해보자』며 오히려 위로의 등을 두드려 주기까지 했다.
일단 호의적인 반응을 얻긴 했으나 그래도 꺼림칙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내친김에 다음날 새벽 결례를 무릅쓰고 임원장의 자택을 찾아갔다.
어제 말씀하신 연구결과를 지시 받으러 왔다고 말했더니 기가 막힌 모양이었다.
오후에 법원사무실로 다시 찾아갔다. 『이군의 성의를 봐서 재무장관의 요청공문과 구취인소의 청산원료 등기를 책임지고 하겠다는 각서를 가지고 오면 해주겠다』는 말이 한참만에 그의 입에서 떨어졌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 속에 재무부에 돌아와 신바람 나게 윤 차관에게 결과보고를 했다.
지시대로 꾸민 서류를 법원 등기과에 제출하고 나서 임 원장실로 찾아가 머리가 깨지도록 절을 연거푸 해댔다.
56년 2월 11일자로 설립 등기를 마친 대한증권거래소는 3월 3일 드디어 개장을 보게 되었다.
개장식에는 당초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함태영 부통령이 대신했으며 전 경제계인사들이 참석, 때마침 내리는 서설 속에 증시의 출발을 축하했다.
함 부통령은 고사를 통해 일제 때에는 이 자리가 일본의 자본착취기관 증오스럽기 짝이 없던 곳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오늘의 개소가 이 나라 경제부흥의 밑거름이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계속> 【이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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