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교과서 없는 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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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앞으로의 학생들은 교과서를 전혀 갖지 않고 학교에 다니게 될지도 모른다.
교과서 대신에 도시락 만한 마이크로 컴퓨터 하나만을 들고 가면 된다.
이러한 컴퓨터의 생산은 초대규모집적회로(VSLI)의 출현으로 가능케 됐는데 금년 봄 미국의 「인텔」사는 손톱크기밖에 안 되는 3개의 마이크로프레임에 트랜지스터와 그 부속회로로 따져 25만개 분에 해당하는 칩을 개발해냈다.
l946년 최초의 컴퓨터인 애니악(Aniac)이 l만8천개의 진공관을 썼고, 크기가 대형사무실을 꽉 채울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손톱 위에다 애니악의 14배의 능력을 부여시킨 것이다. 현재 이용되고 있는 교육용 컴퓨터는 도시락만큼 소형화되지 못했지만 83∼85년도 사이에는 백과사전과 선생님의 역할이 합쳐진 컴퓨터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단일 목적으로 생산되는 휴대용 컴퓨터는 계산기와 번역기.
계산기는 이미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널리 애용되고 있다.
번역기는 78년 미국에서 개발됐는데 영어를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일본어로 바꾸는 것들이 보편화되었다.
일본의 「샤프」사는 79년 영어단어 7천8백 개를 일본어로 바꿀 수 있는 번역기를 l백66달러(약11만원)에 시판했다.
일본의 「카시오」는 여기다 음성을 보태, 일본어로 키를 누르면 영어문장이 나오면서 음성으로 발음되는 번역기를 개발했다.
이 기계는 2백64개의 일상회화와 2천5백8개의 단어·숙어를 변역하고 발음할 수 있다.
아직 소형화되지는 못했지만 금년 초 한국과학기술원(KAlST)이 미국에서 도입한 플라토시스템(Plato System)은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교육프로그램이다.
KAIST의 대형컴퓨터에 들어있는 자료와 연결된 마이크로컴퓨터인 터미널(단말장치)을 통해 이용하는 이 시스템의 특징은 자료의 제시뿐 아니라 이용자가 내용을 이해할 때까지 가르칠 수 있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영어의 동사를 공부하려는 중학생이 자신의 수준에 맞는 호출키를 누르면 각 인칭에 따른 동사의 변화·규칙동사·불규칙동사·수동태·능동태·현재·과거·미래·진행형·과거분사 등에 이르기까지 자세한 설명과 함께 예문·연습문제 등이 화면에 나오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설명을 보고도 이해가 되지 않는 학생이 다시 설명을 요구하는 키를 누르면 컴퓨터는 이번에는 좀더 쉬운 문제로 바꿔서 다시 한번 자상한 설명을 해준다.
한 분야의 공부가 끝나면 질문을 불러내어 자신의 이해도를 측정할 수도 있다.
먼저 배운 이론에 의한 질문에 키를 눌러 대답하면 맞았을 때는 「OK」라는 글자가, 틀렸을 때는 「NO」라는 글자가 화면에 나오고 일정문제의 테스트가 끝나면 점수를 매겨 상· 중·하의 평가를 내려주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은 영어뿐 아니라 복잡한 수학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수학이나 과학에서는 그러한 결과가 나오는 과정과 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과학기술원이 도입한 자료는 수학·물리학·화학·생물학·정치학·역사학·철학·어학·심리학 등을 l천여 분야를 세분하여 초·중·고교·대학·일반·전문연구원의 수준에 맞도록 짜여있다.
한가지 흠은 교과내용이 미국에서 개발된 것이어서 역사학 등 우리의 관심분야와 맞지 않는 것이 있고 화면에 영어로 설명된다는 점이다.
과학기술연구원은 금년 상반기 중에는 이것을 한글화하고 내용도 일부 바꾸어 터미널대여 등 국내에 보급할 예정으로 있다.
지금은 이와 같이 각분야의 교육자료를 망라하자면 대형컴퓨터가 필요하지만 반도체의 진보는 휴대용 종합교육컴퓨터의 실현을 가능케 하고 거기다가 음성 입·출력 장치까지 따르면 훨씬 이해가 빨라지게 된다. <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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