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10개 시 이름짓기 사연도 많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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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고을이름 작명에 구설수도 많았다. 두 마을이 합쳐 큰 고을이 된 곳은 서로 제고장 이름을 앞세우려 다투었고 눈치껏 내력을 따져 새 이름을 붙이면 생소하다고 나무랐다.
유서 깊은 고을이름은 뼈대있는 씨족들이 고치지 못하게 반대하고 나섰으며 큰 도시와 이웃한 신흥개발지는 땅값 오르는데 도움이 되도록 로비활동을 벌였다.
7월에 새로 탄생되는 10개시의 이름을 붙이면서 내무부실무 팀이 겪은 고충 어린 뒤 얘기를 들어본다.
6개월 동안 여관방을 전전하며 행여 행정구역 개편내용이 새어 나갈까봐 조바심했던 직원들은 지난 27일 입법회의 내무위의 「군 이름 번안동의」(23일 본 안은 이미 의결)에 막바지 곤욕을 치렀다.
시 이름 짓는데 가장 어려웠던 곳은 금성시.
전남 나주읍과 영산포읍이 통합, 시로 승격되기 때문에 두 마을 주민이 서로 머리글자를 앞세워 「나형시」와 「형나시」를 고집. 이 때문에 통일신라시대 이 고을 이름이 금성현이었과 나주읍 뒷산 이름이 금성산임을 내세워 금성시로 중재. 그러나 지명은 그 자체가 역사·문화적 전통을 간직한 것이기 때문에 옛 이름을 바꾸는 것은 문화훼손이라고 비난하는 여론이 물끓듯했다.
금성시 못지 않게 말많은 고을이름은 정주시. 「정주」란 이름은 50년 전 정읍이 읍으로 승격(193l년)될 때 「정읍읍」이라고 부르기가 어색해 생긴 것으로 유서와 전통을 따진다면 「정읍시」로 제 이름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 이곳은 특히 「정읍사」로 이름난 곳이요 신라 경덕왕 때부터 1천2백여 년 동안 정읍으로 계속 불려오고 있어 유서 깊은 고을이름을 되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들 고을과는 대조적인 것이 탄광촌인 황지와 장성읍이 합친 태백시.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뜨내기인 광부들이어서 지연에 뿌리깊지 않은데다가 「새까만 두메산골」로 소문난 황지나 장성에 별다른 애착도 없어 태백산정기를 받아 곧게 뻗어나가길 바라는 뜻에서 「태백」이란 고을이름을 정했다.
서울 위성도시로 개발될 「광명시」도 마찬가지. 이곳은 10여년 동안 서울생활권으로 개발된데다가 30만 주택단지(작년)와 아파트단지도 광명리에 처음 들어섰기 때문에 앞으로 땅값을 올려 받기 위해서도 「광명시」로 작명해줄 것을 주민들이 당국에 요청.
관계자들은 시 이름을 새로 짓는 것보다도 읍을 떼어주고 남는 군 이름을 바꾸는 것이 더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해군을 김주군(고려 때 금주도호부자리), 영천군을 영화군(화북면의 지세가 가장 빚나「영」자에 「화」자를 붙임), 남원군을 용성군(고려 숙종 때 용성관 자리)으로 바꾸려했으나 27일 입법회의 내무위에서 제동이 걸려 마지막 순간에 옛 이름을 지켰다.
이들 옛 지명들은 김해 김씨와 허씨, 영천이씨 등 뼈대있는 씨족들이 수천 년 동안 지켜온 유서 깊은 이름인데다가 시 승격에 따라 가뜩이나 군세가 줄어 군민들의 사기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되살아났다. 고을이름 시비에 휘말린 내무부 관계직원들은『스승을 따르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을 따르자니 스승이 우는 격』이라며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이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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