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공화국의 「개혁의지」뒷받침|백56일만에 활동끝낸 입법회의를 정리해보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11대 국회개원을 불과 열흘 앞두고 그동안 국회기능을 대신해 오던 국가보위입법회의가 31일로 마침내 문을 닫게 됐습니다.
-작년 10윌27일 발족됐으니까 1백56일간 활동한 셈이지요. 기간면에서는 72년 10월 유신때부터 이듬해 3월중순까지 존속했던 비상국무회의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나 처리안건은 비상국무회의의 2백70여건에 비해 입법회의는 2백15건이니 약간 적은 셈입니다.
-외형적으로는 그렇지만 내용면에서는 이번에 더 중요한 것이 많았어요.
-국보위멤버들이 입법의원과 전문의원으로 참여해 국보위에서 발표했던 각층 개혁정책들이 법제화된 것이 많지요.
「특례법」 「임시조치법」 「보호법」「육성법」등의 어미가 붙은 법이 많은것을 보면 과도입법기구로서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개혁주체들의 개혁의지가 입법회의를 통해 제도화된 부분이 많습니다.
-법률명칭자체는 무슨무슨「보호법」이니 「육성법」등으로 되어있지만 그내용은 어마어마한 것들도 많아요.
-누범자들의 사회격리등을 규정한 사회보호법, 학자들과 예술인의 정년제를 도입한 문화보호법 등은 퍽 논란이 많았지요.
-언론기본법도 처음엔 언론육성법이라고 했다가 개칭됐지요. 「육성」이란 명칭이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는 여론때문이었습니다.
-민한당등 일부 야당에서는 벌써부터 당내에 특위라도 구성해 입법회의가 다른 법들을 검토하여 개폐노력을 벌이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비공개회의·간담회등을 너무 자주 활용해 회의운영방식에는 문제가있었지만 법안심의자체는 퍽 신중을 기한 흔적도 있습니다.
정치관계법특위는 김영균 간사위원(헌법제처장)등 소위 멤버들이 며칠씩 밤샘을 한적도 많습니다.
-국보위시절에 준비한 것도 있지만 완전히 새로한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회의과정자체가 전혀 알려지지 않아 졸속처리의 인상을 면키 어려웠지요.
-철저한 상임위중심운영을 한데다가 일부 구정치인출신의원들의 인기발언을 막는다는 명분은 있었으나 회의자체를 비공개로 바꿔버린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는사람들이 많아요.
-행정편의주의를 철저히 배격했다고는 하지만 일부 행정부처에서 이번에도 비상국무회의때의 재미를 보려고 무더기로 안건을 낸 흔적도 없지는 않아요.
-1백56건의 경부제안법률안중 경제관계법이 1백6건이나 되는 것이그런 비판을 받기가 쉬운 대목입니다.
-정치관계법이야 어쩔수 없지만 특허법·상표법·농약관리법등 반드시 긴급을 요한다고 보기 어려운 법들도 상당수 있는 것 같아요.
-의원입법이 33건인데 그중에는 대리입법의 성격을 띤 것도 많아요. 언론기본법·문화보호법등등…
-통과된 법중 주택임대차보호법·소송촉진등에 관한특례법·회사정리법·형의 실효등에 관한법·형사소송법등 국민의 이익과 생활에 직결된 법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보다 활발한 토론과 선별이 아쉬웠던 면도 없지 않습니다.
-81명의 의원중 28명이 11대의원으로 들어갔고 핵심전문위원 2∼3명이 국회전문위원으로 남게됐습니다.
-이광노·이기백·심유선·이우재·조영길·서동렬의원등 6명의 현역장성중 심·이우재의원이 옷을 벗었고 서의원은 원대복귀가 확정됐으나 이광노의원은 국회사무총장에 내정됐고 이기백·조영길의원 거취는 계속 관심의 대상이 되고있습니다.
-당초 임명된 81명중 신부출신의 이종흥의원(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은 의원등록과 선서는 물론 출석도 한번 안했고 세비수령도 일체안해 80명으로 봐야한다는 얘기더군요.
-본인은 종교인의 정치참여가 바람직하지 않기때문이라고 불참이유를 밝히더군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에피소드도 많았지요.
-김철·김정례의원은 꼭 한복차림이었고 서경보스님은 법의를 입었죠.
-대외비안건이 하도 많아 의안과에서는 서류로 법안명칭만 접수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사무처직원들은 보안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였어요.
-전문위원 좌석을 의원들과 나란히 놓고 정책질의까지 허용했다가 곧종전 위치로 바꾼일도 있었죠.
-전문위원들 상당수가 각 부처공무원들이어서 자기부처 예산안이나 법안을 자신이 심사해 보곤했는데 어느 전문위원은 하도 신랄하게 「친정」을 공격해 주변에서 다시 못돌아갈것 같다고 걱정을 하기도 했지요.
-의원들이 질의가 없으니까 위원장이 쪽지에 질의 내용을 써서 질의토록 하는 모습도 간혹 눈에 띄었습니다.
-부의장이 2명 있었지만 본회의 사회는 계속 이호의장이 봤어요.
상임위에서도 위원장이 간사에게 사회봉을 넘긴일이 거의 없었던 것도 과거 국회와는 다른 점이죠.
-2백15건의 처리안건중 본회의에서 찬반토론을 벌인 것은 정치풍토쇄신에 관한 특별조치법등 2개뿐이었고 표결도 단 두번밖에 없었어요.
-본회의에서 20건 이상을 한번에 처리한 일이 거의없어 과거 연말국회때 62건을 무더기 처리한 것에 비하면 충실하고도 신중한 처리라는게 입법회의 관계자들의 주장이기도 했습니다.
-5개월간의 입법회의 활동을 한마디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제5공화국의 출범과 새로운 정치질서 및 사회개혁기반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법적·제도적 뒷받침을 만든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동안의 입법회의의 한일에 대해서는 새로 구성된 민선국회에서 재평가를 받게될 것입니다. <고흥길·한남규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