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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호 사이사이서 전복·소라를 캔다-남제주군 가파도 「해녀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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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좃새기(간조) 놓치면 물질하기가 힘들수다. 재기재기(빨리빨리)물질가게.』 해녀장의 고함소리에 용암석 돌담길이 갑자기 술렁인다.
배구덕(바구니)에 빗창(전복 따는 칼)·어음(망)·잠수복을 챙겨 어깨에 멘 홀태바지 차림의 아낙들이 줄지어 포구로 향한다.
해녀-. 비바람과 성난 물결을 이겨내는 굳건한 여인들. 바다와 함께 젊음을 살고 바다 속에서 백발이 되는 그들이다. 해녀의 원래 이름은  수(반수).
10여명씩 통통배에 나누어 탄 해녀들은 공동채취장인 허성장골로 나가는 참이다.
제주도 남제주군 대쟁읍 가파도.
바다 속을 개척해온 여인들의 장한 노동의 역사가 맥박치는 「해녀마을」이다.
가파도의 해녀 수는 2백70명. 제주전도에 분포되어있는 해녀 수는 8천8백50명으로 하도리의 경우 9백여명의 해녀들이 집단거주를 하고있지만 봄·여름 계절 업을 할뿐 사시사철 쉬지 않고 물질하는 곳은 이곳 가파도 해녀들뿐이다.
대재읍 화포항에서 직선거리로 5·4㎞. 하루 두 번씩 왕래하는 행정지도 선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가파도는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를 코에 닿을 듯 가까이하고 있다.
바다 한가운데로 5백여m를 나가면 허성장골 공동작업장. 해녀들은 스스럼없이 옷을 벗고 부드러운 해풍에 감시 알몸을 맡긴다. 고려 때만해도 발가벗고 물질을 했다하여 금지령까지 내렸던 나잠업의 형태를 재현하는 듯한 착각이다.
잠수복으로 갈아입은 해녀들은 두레박으로 해수를 떠서 잠수복 안으로 붓는다.
수압으로 잠수복이 몸에 붙는 것을 막기 위한 것.
해녀는 배 난간에 뒤로 서서 수면에 등이 먼저 닿도록 뛰어든다.
태양을 가슴에 안고 해면에 따서 물밑을 살핀다.
깊은숨을 들이쉰 뒤 거꾸로 몸을 세워 물밑으로 치닫는 것은 눈 깜박할 사이.
온몸이 물 속에 숨기 전 두 다리만 물위에 서있을 때가 쌍돗대.
해녀들이 작업하는 용암석이 뒤덮인 가파도. 해상은 전국에서 유일한 홍산호의 산지. 수심l2∼16m에는 전복·소라·톳 등 패류자원이 풍부하다.
숨이 좋은 상 수는 물밑에서 1분30∼l분50초까지 견딘다. 일진이 좋아 전복이 용암석 틈새로 모여있으면 노다지. 한숨에 3∼5개를 캔다.
「호잇」바다위로 떠오른 해녀가 참았던 숨을 내뱉는 「숨비 소리」가 언뜻 듣기에 휘파람 같다.
『빈 숨에 올라왔수다. 이리 전복시연 못덤시메 강 터다도라』(허탕치고 왔다. 여기 전복이 있는데 못 따겠으니 가서 따와라).
방금 해면에 오른 나영일씨(45·해녀회회장)는 힘에 부쳐 못 캔 전복을 동료에게 부탁한다.
나씨는 지금도 수심 lm의 물밑에서 미역을 따는 올해 72세의 시할머니 임성지씨, 시어머니 김부지씨(67)와함께 해녀3대 집안이다.
『몇년전만 해도 꽤 오래 숨볐는데(잠수했는데) 이제는 힘둘수다.』
15세 때부터 시작한 물질이 벌써 30년째라는 나씨의 말이다.
나씨는 속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대신해 3남2여를 고등학교까지 진학시킨 가장이다.
해녀들이 작업하는 시간은 좃새기에서 반물새기(반간조)까지 3시간 정도. 무명으로 짠 재래식 속곳차림으로는 한시간을 견디기도 힘들었지만 3년전 「스펀지」잠수복이 보급되면서 작업시간도 늘고있다.
하루의 잠수회수는 40∼50회. 반배구덕 정도 전복과 소라를 캐면 7천∼1만원 정도의 수입을 얻는다.
묘포항 수협을 통해 채취물 전량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가파도 해녀들의 지난해 총수입은 2억l백만원. 개인 당 수입은 솜씨와 작업일수에 따라 다르지만 사철 물질을 한 해녀는 3백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실제 손에 쥐는 것은 전체수입의 반정도. 고된 물질을 하려면 보신제·영양제와 수압으로 인한 두통 해소제 등 약값으로 나가는 돈이 많기 때문.
가파도 해녀는 6∼7세가 되면 놀이 삼아 포구의 얕은 물에서 헤엄을 배우고 l2세가 되면 수심 5m정도의 바다에서 초보적인 물질을 익힌다.
처음 물질을 배우는 해녀는 제주도방언으로 고매수좀수. 자그마한 보말 해녀라는 뜻이다.
『비바리(처녀)들은 시집갈 혼수감 준비하느라 물질을 시작하지요.』
이장 이인식씨(51)는 처녀들이 물질로 혼수감 마련을 하다보면 결혼연령이 늦추어져 평균24∼25세가 돼야 혼례를 치른다고 했다.
가파도의 주민은 9백7명. 주민의 80%가 어업에 종사한다.
『비바리들이 자꾸 본도로 떠나고 보자기질(고기잡이)이나 풀질에 신물이 난 주민들이 한해에 2∼3가구씩 떠나 주민수가 매년 줄어들지요.』이장 이씨는 늙고 기운 없는 사람들만이 이 섬을 지키게 될 것 같다고 걱정이다.
해녀들에게 큰 고민거리는 참수어선의 머구리들이 공동어장을 침해하는 일. 5년전에는 법정투쟁까지 벌여 공동어장을 지키기도 했다.
지금은 공동어장 밖에서 분기별로 5일씩 잠수어선들의 작업용 허용하는 선에서 타협을 보았지만 수심 15m라는 공동어장 구획기준이 항상 다툼거리가 된다.
『잠수복이 보급되면서 물질도 깊어졌수다. 공동어장 수심을 20m쫌 해야 머구리들과 다툼이 없습니다.』
오계생씨(60)는 생계가 달려있는 공동어장은 보호돼야한다고 주장한다. <남제주=엄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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