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해저유물의 밀반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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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근년에 우리가 이룩한 문화면에서의 성과로서 흔히 한국학의 기반조성과 문화재에대한 국민적 인식이 높아졌다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그것은 광복과 6·25동란의 역사경험을 통해서 한국인이 자기자신이누구인가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세계속에, 존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은 결과로 얻어진 훌륭한 소산이었다.
70년대에 활발히 이루어졌던 문화재의 발굴과 보수·복원및 정화작업등 문화재사업의 확대로해서 얼마간의 성과를 얻었던 것은 부인할수 없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와서 그같은 과거의 문화재사업들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야를 갖게됨에따라 그「문화재」인식에도 문제가 많음을 알게되었다.
특히 70년대 문화재발굴의 도미를 장식하는 쾌사였던 신안해저유물가운데 일부가 도굴범들에의해 적잖이 유출되고 그 가운데 일부는 신안유물전체중에서도「절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에 이르러서 새삼「문화재인식」의 문제가 심각한 것임을 확인하게된다.
이번 해외밀반출을 시도했던 문제의「청자양각모단문대화병」만해도 세계에 알려진 원대자기중 가장 크고화려한 유물로서 그값은 쉽게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며 송·원대 자기편년에 훌율한 자료가 된다는 점도 간과될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도 이 신안유물의 도굴사건으로 우리 문화재 전체의 문제을 유추할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 유물이 78년5월에 인양작업을 일시 중단했던 시점에 도굴되었다는 점에서 당국의 감시소홀을 들수 있다. 조류나 파도등 인양여건이나빠서 인양이 중단되었는데 도굴꾼들은 유유히 수백 수천점의 유물을 끌어낼수 있었다는 점도 미심쩍다.
도굴꾼들은 무거운 잠수복을 입고 작업중에 무수한 자기를 파손했으며 인양중에 덜 귀중한 것은 함부로 버렸다고도 하니 안타깝기만하다.
이중 일부는 국내에서 밀매되거나 혹 공소시효를 넘기기위해 은닉될수있으며 가장 나쁜 경우론 국외밀반출의 위험이 있다. 특히 문화재의 경우는 한번 해외에 유출되면 다시는 우리손에 되돌려받기 어렵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있다.
이번 원자기의 경우는 다행히 해외밀반출 이전에 발각되었으나 이로써도우리의 많은 동산문화재가 국외유출되고 있음을 넉넉히 감지할수 있다.
신안유물의 경우만이 아니라 전국도처의 문화재가 적잖이 도굴되거나 도난·훼손되고 있음도 잘알려져 있는바다.
유물이 나올만한 고분들은 거의 호리꾼에 의해 도굴되었으며 사찰등에서 문화재가 도난되는 사례도 수없이 많았다. 심지어는 국보나 보물등 지정문화재마저 도난·훼손됨에 이르러서는 더할말이 없어진다. 물론 문화재 보호가 이같은 도난·도굴·훼손을 막는것에 그치는것은 아니다.
문화재의 발굴·보수·복원등 적극적인 시책이 중요하다. 70년대의 문화재사업이 외견상 성과를 보였던 것도 이련 적극 시책의 덕이었다.
하지만 문화재는 원형보존이 요체로서 단한번 잘못 취급하면 다시는 돌이킬수 없는 것임은 상식에 속하거니와 이를 무시하고 문화재취급에서 결정적 과오를 범한 경우도 여러차례있다.
보존과학의 뒷받침없이 고분발굴을 서둘러 유물을 손괴한다는가, 고도의 모습을 보존한다는 원칙을 무시하고 도시를 새로 개발했던 것도 큰 과오였다.
고적을 복원한다고「시멘트」기둥에 단청을 입히며 고색창연한 건물에 아무 전거도없이 미색을 입힌 사례를 수없이 보아왔다.
문화재도굴도 일종 도범인것은 사실이나 그들이 문화재를 단순한 상품으로서 다루기에 앞서 보다 귀중하게 다루었어야 한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점에서 앞으로의 문화재시책은 좀더 진지하고 정성담긴 것이어야할 뿐더러「개발」이나 보호관리의 소홀로인해 손괴되고 잃어버리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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